이기준 사회부장

매미의 울림소리는 무척 성가시다. 때론 짜증도 난다. 필요 이상으로 크다고 생각했다. 매미의 일생을 알기 전까진 그랬다. 7년 전 나뭇가지에 숨겨진 알 하나, 이듬해 알에서 깨어나 스스로 땅속을 파고든다. 나무뿌리의 즙, 수액을 빨아먹으며 6년의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4번의 탈피를 마치고 7년째가 되는 해 어느날 어둠이 깔리면 드디어 땅 위 세상으로 나온다. 천적의 눈에 안 띄어 운 좋게 살아남으면 나무줄기에 발톱을 단단히 박고 때를 기다려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친다. 7년을 기다려 세상에 태어나는 거다. 그러나 이 성충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 길어야 한 달이다. 이 시간 안에 짝을 찾아 번식을 못 하면 쓸모없는 생을 살다 가는 거다. 도시의 소음보다 더 크게 울지 않으면 수컷은 암컷을 만나지 못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인 안도현은 이렇게 읊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은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매미의 울음엔 그래서 애처로움과 절박함이 있다.

올 여름 매미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애절하고 절박한 울음소리가 또 들린다. 조금 있으면 받아들게 될 전기요금청구서에 대한 걱정 소리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역사상 가장 더웠다던 1994년의 기록들이 소환될 정도다. 한 달 넘게 지속된 폭염을 견디기 위해 에어컨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한전 사이버지점 등을 기웃거리며 전기요금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했다. 전기요금 누진제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이 에어컨이 전기를 얼마나 잡아먹나’, 전엔 쳐다보지도 않았던 에어컨 소비용량 정보까지 뒤져야 했다. 원성이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전기요금 경감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시적인(7·8월) 누진제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성에 안 찬 일부 국민들은 ‘누진제를 폐지하라’고 울부짖는다. 어림없는 소리지만 매미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절박함이 내재돼 있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어찌 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전기의 편리함에 안주한 결과다. 약간의 안락을 위해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를 더 쓸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만들었고 과도한 에너지 소비는 지구환경에 부담으로 작용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기후변화로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져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보일러·온풍기에 의존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 거다.
올 여름 비명소리가 커진 곳은 또 있다. 바로 커피숍이다. 올 초 플라스틱·비닐류 수거 대란과 맞물려 정부가 과도한 플라스틱 컵 사용에 대한 단속에 나서자 ‘이게 뭐냐’는 항의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역시 전기요금 누진제의 인과응보와 연결된다. 각종 쓰레기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처리하기 위한 에너지가 비례해 지구환경에 대한 부담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를 하면 할수록 추가 지출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자신이 쓴 육사룡집(陸士龍集)에 선비가 매미를 좋아하는 5가지 덕(德)을 이렇게 소개했다. ‘곧게 뻗은 입은 선비의 갓끈과 같고 이슬과 수액만 빨아먹으니 맑음이 있고 사람이 가꿔놓은 곡식이나 과실, 채소를 해치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둥지조차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 초여름 자기가 올 계절에 오고 겨울이 오기 전에 가야 할 때를 아니 신의가 있다.'
매미의 울음과 인간의 곡소리가 같을 수 없는 이유다.

법원 언저리에서 또 다른 곡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안희정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다. 뜨거운 여름 날씨 만큼이나 핫(hot)한 이슈여서 관심이 집중됐는데 법원은 안 전 충남지사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단체들은 울부짖는다. 계절은 이제 막바지 여름을 지나 가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 사회의 온도는 더 뜨거워질 것 같다. 이래저래 올 여름은 정말 지치게 만든다. 뜨거운 여름, 이슈는 달궈지고 고민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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