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화·세계화로 탄생한 지역학
지역 성장의 새 힘 가할 단초
국내에선 기초지자체로까지 확산

한 때 부침(浮沈)을 겪던 지역학은 오늘에 와서 지역 발전을 위한 필수 기반으로 자리매김했지만 내년이면 시 출범 70년, 광역시 승격 30년을 맞는 대전 지역학의 갈 길은 멀다. 오늘날 지역학은 단순히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섰다. 지방정부가 지역민과 함께 현안을 풀어내가는 기초로 그 역할을 확장했기 때문이다. 충남도청 이전, 세종으로의 인구 유출 등으로 성장 동력을 잃고 있다는 걱정이 쉼없이 나오는 대전에서 지역의 정체성(Identity) 정립, 경쟁력 축적을 위한 ‘대전학’이 하루빨리 정상궤도에 올려져야하는 이유다. 편집자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지역민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보다 발전적으로 구축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지역학은 지방화, 세계화 시대를 맞아 각 지역에서 경쟁적으로 대두됐다. 이미 지역학은 동아시아권에서 1980년대 말부터 다양한 논의가 전개돼 왔다. 1986년 중국에서는 상해학으로 그 시작을 알렸고 이후 1998년 북경학 수립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선 1991년 에도 도쿄학으로 관련 연구를 본격화했으며 국내에서는 1993년 서울 정도(定都) 600주년을 기념해 수립된 ‘서울학’으로 첫 발을 뗐다.

지자체들이 지역학에 관심을 보인 것은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그 하나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로 시작된 지방화 물결이다. 중앙의 일방적 지방 지배가 아닌 자율에 의한 자치(自治)가 화두로 자리 잡은 것인데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역 정체성을 정립하는 일이 관건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세계화다. 국내에서 세계화 논쟁이 벌어졌던 1980~1990년대만 해도 이를 경계하거나 비판, 배척하려는 경향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인 한국 입장에선 세계화를 일방적으로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고안이 필요했는데 지역에선 정체성이 담긴 특성 있는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문화 산업으로 육성, 이를 다시 세계화시킴으로써 지역 발전 동력으로 삼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지역학은 잃어가던 지역 발전 동력에 다시 힘을 가할 귀중한 단초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학을 수립했다. 지난 2016년 기준 가장 최근 수립된 세종시를 제외하면 수도권에서 서울학과 인천학, 충청권에서 충청학·충북학·대전학·충남학이 수립됐고 영남권의 영남학·부산학·대구경북학·경남학·울산학을 비롯해 호남권의 호남학·광주학·전북학, 강원권의 강원학, 제주권 제주학까지 전국 광역급 이상 지자체에서 주도적으로 그 싹을 틔웠다. 2010년을 전후해서 이런 경향은 안산학, 수원학, 천안학, 홍성학, 예산학 등 기초지자체로까지 확산됐다. 지역의 한 지역학 연구자는 “지방화 시대와 함께 급속한 세계화 물결이 지역학 출현을 재촉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라며 “지자체마다 자기 지역의 학문을 정립하려는 노력에 열을 올리는 것은 ‘지역의 정체성 정립이 곧 지역 경쟁력’이라는 공감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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