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 공주대 교수

입추를 지나면서 기상관측 이래 초유의 폭서를 기록했다는 올 여름의 더위도 그 기세가 꺾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낮의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심야에도 25도가 넘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열대야 현상으로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더위에 취약한 노약자들이 목숨을 잃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진단에 따르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간활동의 영향이 이미 지구환경 자체의 자연적인 조절능력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한다. 올 여름 같은 더위가 계속 반복되거나 더 심화될 것이라고 예측, 경고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지구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출구전략의 수립과 실천이 어렵다는 것이다. 국가마다 이해득실의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에 범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환경보전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대책을 세웠다고 해도 실행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같은 국가 안에서도 지역, 계층 또는 정파에 따라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환경의 보전을 위한 국제적 공조나 국가적 대책의 마련과 실행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과제인 만큼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지구환경과 관련된 문제는 국가적 또는 초국가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창한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구촌 시민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개인적인 노력의 축적이 절실하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환경의 개발이든 보존이든 궁극적인 수요자도 공급자도 개인적 차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지구환경을 공유하는 지구촌 시민의 입장에서 올 여름과 같이 기록적인 폭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여름나기가 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흔히 여름철이 되면, 더위를 피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피서지를 찾아간다. 깊은 산속 계곡에 발을 담갔을 때의 시원한 느낌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인파에 치이다 보면, 대개는 후회를 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피서철에 고속도로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차들이 태우는 연료에서 형성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 현상을 가속화시키게 되니, 이것이 더위에 기름을 붓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위를 피한다면서 더위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효과적으로 더위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피서지 대신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실내온도가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된 올 여름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 집을 숲속의 계곡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문을 다 열고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부채 하나만 들고 거실바닥에 누웠다. 선풍기는 미풍으로 회전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되었다. 흐르는 땀과 부채질, 선풍기 바람이 상승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원한 느낌이 사라지면, 동네 상점까지 이삼분 정도 걸어가 과일 몇 개를 사다 먹었다. 뙤약볕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온몸을 휘감아오는 시원한 쾌감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위를 피하지 않고 직면해 이기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더위를 견디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더위가 시원함으로 바뀌는 시간의 임계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더위가 시원함으로 바뀌는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 때문에 이러한 피서법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올 여름 유례없는 더위를 겪으면서 더위에 지지 않고 이기는 효과적인 여름나기 방법으로 생각해 본 것은 바로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여름나기이다. 피서(避暑)보다 용서(容暑), 용서보다 낙서(樂暑)가 됐으면 좋겠다. 더위를 피하지만 말고, 그것을 인정하고 즐기고 고마워하자는 것이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으면, 그것이 문제가 되고 기상이변이다. 기상이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방병 같은 신체이변으로 바뀔 수도 있다. 오는 더위 막지 말고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자.

간혹 여름의 사랑(?)이 지나칠 경우가 있더라도 원망하지 말고 참고 견디는 요령을 찾아보자. 며칠만 견디면 입추처서가 되고 가을이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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