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淸虛)하게 떨어지는 꽃송이
몌별(袂別)의 그리움 묻어있네
궁궐의 담 타고 자위(紫?)를 뽐내건만
그리운 임 보이질 않네
삼복 열기에 달궈지는 금등화(金藤花)

맺힌 한(恨) 꽃가루 숨기고
7·8월 무더위 트럼펫 불며
줄기 난 물부리로 벽을 타고 오르자
귀먹은 바람 눈치 없이
능소화 흔드네, 바람에 흔들리네

뚝뚝 떨어지는 꽃이파리
하늘을 이기려다 꺾인 자존심
능소화 덩굴에 매달고
오늘도 어사화(御史花) 꿈꾸며
사대부 담장 타고 오르네, 오르고 있네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는 금등화(金藤花) 또는 자위(紫?)라고 한다.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에 붙어서 올라가고 길이가 10m에 달한다. 잎은 마주나고 홀수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7~9개로 달걀 모양의 바소꼴이고 길이가 3~6㎝이며, 끝이 점차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는 톱니와 더불어 털이 있다.

꽃은 8~9월경 피고, 가지 끝에 원추꽃차례를 이루며 5~15개가 달린다. 꽃의 지름은 6~8㎝고, 색은 귤색인데, 안쪽은 주황색이다. 꽃받침은 길이가 3㎝이고 5개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바소 모양이고 끝이 뾰족하다. 화관은 깔때기와 비슷한 종 모양이다. 수술은 4개 중 2개가 길고, 암술은 1개다. 열매는 삭과이고 네모지며 2개로 갈라지고 10월에 익는다.

능소화는 ‘구중궁궐의 꽃’이다.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눈에 띈 그녀는 하룻밤 사이 빈(嬪)의 자리에 앉아 궁궐에 처소가 마련됐다. 그러나 임금은 빈의 처소에 찾아오지 않았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을까?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가를 서성이다 지친 소화는 ‘내 시신을 담장 아래 묻어다오, 죽은 혼이라도 이곳에서 임금님을 기다리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유언대로 그녀는 담장 밑에 묻혔다. 새들이 나무 그늘을 찾아 모여드는 뜨거운 여름. 궁궐 담장을 감아 올라 밖으로 넘긴 덩굴에서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능소화라 불렀다. 영어로는 ‘Chinese Trumpet creeper’라 한다. 담장을 휘어감고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꽃잎의 모습이 트럼펫과도 흡사한 능소화는 꽃잎을 따 갖고 놀다가 꽃의 충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을 한다는 독한 꽃이다.

능소화의 소(?) 자는 비우(雨) 변에 같을 초(肖)를 더해 ‘하늘’ 또는 ‘싸라기’ 소로 읽는데, 우리나라 상용한자에선 제외된 비운의 꽃이다. 그러나 한자로는 능가할 능, 또는 업신여길 ‘능(凌)’ 자에 하늘 ‘소(?)’ 자를 사용하는 능소화는 하늘 같은 양반을 능가한다는 이름 때문인지, 양반집 정원에서만 심을 수 있었다. 일반 상민이 능소화를 심었다가 발각되면 태형을 받았기에 ‘양반꽃’이라 불렀다.

중국 연경에서 수입된 이 꽃에 대한 기록은 17세기 이후 서울 자하문 안 영조의 사위 월성위(月城尉) 저택과 순조 때 영의정 심상규(沈象奎)의 처소, 그리고 종로 사직동 덕흥대원군 사당 정도였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그의 저서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와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능소화·금전화(金錢花)·거나이화(渠那異花)는 모두 독이 있어 눈을 가까이 해선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능소화를 쳐다보다가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눈에 들어갔는데 실명했다”라며 능소화의 꽃에 독이 있음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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