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내려앉으면 노파의 호객행위 시작 / 레드존 길 하나 건너면 또다시 윤락·향락 / 성매매 문제 인식 의도적 삭제 경향 유감

역전1길 입구에서 서면 ‘청소년통행금지구역(레드존)’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대전 동구 대한통운 건물 뒤에서 정동지하차도까지 이어진 역전1길.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빨간 글씨의 ‘청소년통행금지구역(레드존)’ 푯말이다.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해 지자체장이 지정할 수 있는 레드존은 청소년 정신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윤락가와 유흥가 등이 밀집한 곳에 청소년이 출입하지 못 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역전1길은 이 레드존 중 한 곳이다.

지난 18일 오후 8시경 땅거미가 내려앉은 역전1길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윤락가와 유흥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불빛이 없다. 어두워지면 행인의 발길 또한 더욱 뜸해진다. 이곳은 윤락 수요가 사라진 이후 건물이 노후 되고 주민·성매매 종사자의 고령화가 겹치면서 동네 공동화의 문제를 안게 됐고 주민이 하나둘 떠나면서 줄곧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곳곳서 보이는 건 쇠락의 흔적. 행적 드문 거리에서 한 노파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총각, 쉬었다가. 일루와 봐.” 이 노파는 역전1길에서 유일하게 만난 성매매 호객꾼이었다. ‘쉬다가라’는, 욕망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이 노파의 말은 레드존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귓가를 간지럽혔다.

오후 8시 30분, 역전1길 레드존을 지나 도로 맞은편인 대전로·태전로·중앙로(이하 대전로) 일대로 향했다. 레드존을 지나 마주한 풍경은 또 다른 윤락가와 유흥가였다. 여인숙과 모텔이 밀집한 대전로 일대 곳곳에서는 유흥업소 네온사인이 반짝였다. 한 젊은 여성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더니 총총걸음으로 한 모텔로 들어갔다. 대전로 일대에서는 의자에 앉아 호객행위를 하는 중·노년 여성들이 자주 목격됐다. 한 노파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삼촌, 20대 많아요. 해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끌었다. 길 어귀에선 수 명의 호객꾼이 경쟁하듯 성매매 호객을 하기도 했다. 한 주점 앞에서도 “쉬었다 가요. 이리 와봐”라며 행인의 욕망을 자극했다.

숨죽인 채 어둠 속에 숨어있는 대전역 인근 성매매 호객행위는 생존의 몸부림이다. 그래서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 호황의 시절은 이젠 옛 이야기가 됐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이들은 그저 그렇게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손정아 여성인권티움 여성인권지원상담소장은 “정동(역전1길) 주변은 고령의 성매매 여성들이 많고 주로 여인숙 주인이 그 일을 겸하는 경우가 많다. 중동(대전로 일대)은 20~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매매 종사 양태가 나타나고 있는데 대부분 고령 극빈층이거나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한 사람들”이라며 “대전역 주변은 성매매 집결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 같은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면서 문제 인식마저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삭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글·사진=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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