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오백리길 7구간 지도
본보 6일 목요일자 10~11면 와이드 지면
대청호오백리길 7구간의 시작점을 알리는 이정표
꽃봉으로 가는 길. 꽃봉 정상까지는 1km 남짓의 힐링코스다.

 

기록적인 폭염은 어느새 사라지고 가을비가 자리를 대신한다.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든 곳엔 풀벌레 울음소리가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또 한 번 계절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날 준비를 마쳤다. 신록의 푸름은 이제 조만간 단풍의 빨강으로 물들어간다. 그러나 대청호는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은 여름의 신록, 그리고 신록의 푸름을 둘렀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매력이 한참이나 남았듯이 말이다. 나그네들 역시 대청호가 잡고 있는 매력을 움켜잡고자 올해 마지막 여름이 될 수 있는 대청호 앞에 섰다.

◆ 꽃봉의 수려한 모습을 질투하는 가을바람
대청호오백리길의 7구간 역시 방아실 입구에서 시작한다. 6구간과 마찬가지로 방아실 입구에서 방아실로 향한 뒤 담벼락이 하얀 주택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산으로 향하면 된다. 빗물을 흠뻑 머금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푹신함을 제공하는 솔잎길이 시작된다. 아직은 경사가 크지 않은 데다 푹신함까지 더해져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여름을 몰아내기 위한 가을의 장마가 여전히 하늘을 차지하고 있어 금방이라도 화를 낼 법하지만 선선한 바람 때문에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풀잎에 머문 작은 새벽이슬, 새벽이슬을 받으러 온 일개미 떼가 눈에 들어올 때 쯤 6구간과 7구간의 갈림길이 나온다.

7구간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갈림길을 중심으로 북쪽은 6구간의 주촌동으로, 동쪽은 7구간의 꽃봉으로 향한다. 꽃봉까지의 거리는 불과 1㎞ 남짓. 그러나 산의 능선을 따라 쭉 걷기 때문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꽃봉으로 향하는 길은 이름처럼 평화로울 것 같지만 꽃봉을 보기 위해선 대청호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꽃봉으로 향하는 산은 지도에 이름 자체도 없는 곳이다. 그러나 등산객은 대정리에 있다고 해 이곳을 대정산이라고도 한단다.

꽃봉으로 향하는 중간에 산성터가 있는데 이 역시 이름이 없어 대정리산성이라고 불린다. 대청호오백리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어 길을 잃을 일은 없지만 제법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인해 대청호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대청호는 시각을 자극하진 않지만 대청호와 소나무숲을 훑고 오는 차가운 바람만이 피부를 때려 대청호의 향기만을 전하며 촉각으로 느끼게 한다. 여름 특유의 습함은 바람에서 느껴지지 않고 후각에선 대청호의 청명함 혹은 시원함만이 남는다. 결국 대청호는 끝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꽃봉의 끝자락에 다다른다.

꽃봉의 옛 이름은 화봉이다. 아름답고 꽃이 아주 많이 피어 있는 봉우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봉이 워낙 예뻤는지 하늘은 무심하게도 비와 함께 바람으로 심하게 성질을 부렸는지, 꽃은 그저 망울만 남긴 채 가을의 채색을 준비 중이다. 방아실 입구에서 계속된 작은 여정에 쉼표를 찍고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신선함을 벗어던지고 완숙미를 뽐내고자 준비하는 꽃망울을 바라본다.

꽃봉에서 충분히 다리에 휴식을 주고 발걸음을 이어가면 곧바로 내리막이 쭉 이어진다. 내리막을 걷다보면 산 언덕에 빼꼼 얼굴을 가린 대청호의 일부분이 방아실 마을에 드문드문 위치한 형형색색의 지붕과 담백한 절경을 선사한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순간 불어오는 거대한 가을바람은 나그네들에게 또 하나의 절경을 선사하며 발길을 이끈다.

옥천 수생식물학습원에서 바라다 본 호반의 모습
옥천 수생식물학습원

 

◆ 시간이 멈춘 곳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
꽃봉에서 내려온 뒤 길을 따라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보면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목청껏 우는 닭과 자신의 경계에 온 걸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아 위협하는 강아지가 적적한 산골마을의 정적을 부순다. 두 불협화음 위에 할매들의 볼멘소리가 더해져 시골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삼위일체가 된다. 간혹 큰 가을바람이 불어와 이들의 소리를 지우는 순간 정적의 평화가 찾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한껏 달랜 체력을 끌어올려 걷다보면 옥천수생식물학습원이 나온다. 수생식물학습원은 6만여 ㎡의 넓은 규모로 2003년 5세대의 주민이 수생식물을 재배한 것에서 시작됐다. 현재는 1만 본이 넘는 수생식물과 천연연못이 학습원을 더욱 돋보이게 꾸며준다. 입장료는 5000원으로 비교적 비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물욕을 앞세운 자신의 마음가짐에 반성을 하게 된다.

곳곳에 쓰인 팻말처럼 이곳에선 모두가 숨을 죽여야 한다. 그래야만 바람 한 점에 갈대같이 흔들리는 대청호, 그리고 나뭇잎의 작은 움직임이 주는 소리를 만나볼 수 있어서다. 여기에 자신의 존재를 힘껏 알리기 위해 한창 싸움 중인 여름의 매미와 가을 풀벌레의 노랫소리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깎아내린 절벽에 위치한 정자에선 마음 편히 앉아 소박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대청호가 주는 오감, 그리고 명상을 통해 얻는 육감까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큰 매력이다. 정자에서 심신의 수련을 마친 뒤 곧바로 산책로를 걸으면 대청호를 발밑에서 볼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진 푸름의 수평선이 충북 옥천, 그리고 하늘과 맞닿아 신록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이들이 선사하는 신록의 상쾌함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워낙 높은 지대에 위치한 만큼 이제껏 걸어온 구간과 남은 구간의 일부분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커다란 자연의 경관 앞에 예의를 충분히 지켰다면 작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커피숍으로 이동한다. 대청호 앞에서 숙연해졌던 마음의 기지개를 켤 시간이다.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통해 여유를 즐기며 학습원과 대청호가 줬던 감동에 대해 한량들이 의견을 나눠본다. 대청호의 곳곳을 즐겼던 나그네들인 만큼 눈이 높아졌을 터이지만 새로운 경험, 그리고 새로운 절경 앞에 감탄을 쏟는다.

충청의 명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작은 금강이라 극찬했던 부소담악
추소정에서 바라본 부소담악 풍경

◆봄과 여름이 아직 가지 않은 부소담악
학습원을 나와 7구간의 대미를 장식할 부소담악으로 방향을 잡는다. 충북 옥천 방향으로 거먹골과 항곡리를 지나 공곡재까지 넘으면 부소담악에 거의 다다랐다. 공곡재는 7-1구간의 시작점으로 부소담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고리산이 위치했다. 제법 높은 경사로 이곳에선 이름 좀 날리는 곳인 만큼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우기고 싶은 한량들은 빠른 속도로 고리산을 못 본채 지나간다.

공곡재를 지나면 부소담악까지는 약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도로와 함께 걷는 구간이라 심심할 수 있지만 충청의 명사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작은 금강이라 극찬했던 부소담악을 육안에 담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앞선다. 부소담악. 참 생소하고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말이다. 부소담악은 물 위로 솟은 기암절벽인데 호수 위에 떠 있는 병풍바위라는 뜻이다. 부소담악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청댐이 생겨 산 일부가 물에 잠기자 바위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은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한다. 즉, 우암 선생이 극찬했던 작은 금강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은 조금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부소담악에 도착하면 왼쪽에 장승들이 나그네들을 안내한다. 제법 무서운 표정으로 맞이하지만 크기는 꽤 작아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부소담악을 걷는 구간이어서 직접적으로 부소담악을 볼 수 없지만 곳곳에 볼거리는 가득하다. 대청호와 어우러진 데크길이 반기며 부소담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추소정이 나온다.

부소담악 전망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간간히 들렸던 매미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쌀쌀해진 날씨와 함께 풀벌레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며 뉘엿 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이곳에서 이제껏 흘린 땀을 바람에 날려 체온을 내린 뒤 마지막 추소리 절골까진 직선으로 약 1㎞ 정도다. 사실상 부소담악길이 마지막 구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소담악이 자랑하는 병풍바위를 보기 위해 부소담악길을 나와 절골로 향한다. 그리고 부소담악의 진정한 아름다움, 우암 선생이 극찬했던 작은 금강의 병풍바위를 바라보며 7구간의 여정과 함께 대청호의 여름은 그렇게 끝을 향했다.
글·사진·영상=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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