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연(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초학획일지도(初學畫一之圖)’. 충남역사박물관 소장

돌이켜보면 ‘공부’하면서 공부가 무엇인지, 왜 하는지와 같은 류의 고민을 해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답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취업’ 같은 것 말이다. 대신 고민은 늘 ‘잘 하는 방법’에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비법을 만들어보지만 누구나 우등생이 되지는 못하고, 우등생의 비법이 누구에게나 통하지 않는 게 공부, ‘노력’과 ‘끈기’만이 만고불변의 비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즈음엔 공부는 이미 삶에서 멀어져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대부분이 겪은 공부에 대한 슬픈 회고가 아닐까 싶다.

옛사람들의 공부는 우리와 달랐을까? 충남 논산 노성면 파평윤씨 문중에서 운영한 종학당(宗學堂, 충남유형문화재 제152호)은 17세기 호서지방의 대표적인 문중교육기관이다. ‘초학획일지도’는 여기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길이 197cm, 폭 53cm, 묵색 바탕에 새긴 백색 글씨, 단정한 적색 외곽이 주는 느낌이 왠지 ‘학구적’이다. 실제 이 현판 아래 공부한 42명의 학생이 문과에 급제했다고 하니 신통한 부적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초학획일지도’는 율곡 이이가 그린 도표에 윤증이 설명을 단 것으로, 쉽게 말하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부지침서이다. 이 때문에 글이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으면서도 대체로 간략하고 쉽게 읽힌다. 윤증은 이 도표를 만든 이유를, 학문이란 일상에서 터득하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 썼다.

「율곡 선생이 말하기를, “소위 학문이라는 것이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일에 따라 합당함을 얻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특별한 사람의 일로 미루어 버리고는 스스로 안주하여 포기해버리니, 어찌 슬프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지금 내가 이 도표를 만든 것은, 사람들에게 소위 학문이 이와 같은 것에 불과하므로 애초에 알기 어렵고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해주려는 뜻에서이다.」(명재선생유고 <초학획일지도> 중에서)

맨 앞의 ‘총도(總圖)’는 요약된 하루 생활계획서와 같은 것으로, ‘일찍 일어나기[숙흥夙興]’, ‘일상생활[일용日用]’, ‘늦게 잠자리 들기[야매夜寐]’의 3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일상생활’을 세분한 ‘몸가짐[지신持身]’, ‘글공부[독서讀書]’, ‘일처리[응사應事]’, ‘대인관계[접물接物]’ 등 4개 항목은 초학자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보편타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윤증이 말하는 ‘학문’은 요즘의 공부, 즉 책으로 하는 공부만이 아니라 마음공부와 실천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이 이치를 참으로 알고 실천한다면 최고로는 성인이 될 수 있고, 다음으로 현인이 될 수 있으며, 못해도 자신을 맑게 수양하는 훌륭한 선비는 될 수 있다”라는 설명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마지막에 붙인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는 주자와 임백화가 의논하여 정한 것을 토대로 윤증이 ‘뜻을 세운다[입지立志]’와 ‘실제에 힘쓴다[무실務實]’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내면의 수양을 목표로 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출세와 체면을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 산림(山林)을 자처하여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윤선거나 윤증의 뜻은 분명 전자에 있었고, ‘초학획일지도’는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시대의 부름에 답하는 것도 유자의 책무이니, 종학당 42인의 문과급제자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인지학’을 하는 요즘 학생들에게 이런 고민이 있을까? 우등생을 목표로 마냥 전진할 게 아니라, 가끔은 멈춰서 고요히 생각해볼 일이다. 장을연(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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