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4대강 물길잇기 사업은 대운하 사업’이라는 양심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징계받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가 10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 8월 17일 경영발전위원회를 열어 징계 처분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너무 늦긴 했지만 참으로 기쁜 일이다.

김이태 박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하던 중 “정부가 영혼 없는 과학자가 되라고 몰아친다”며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운하계획이다”라고 폭로했다. 잘못된 정책마저 애써 합리화하는 보고서를 내라고, 정부가 출연연구기관에 강요하던 분위기 속에 관련 연구자로서는 유일하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즉각 보복하려 했지만 노동조합의 저항과 국민적 반대에 부딪쳐 여의치 않았다. 김이태 박사에 대한 징계 기도에 반발해 시민들은 연일 자발적으로 연구원 앞에 모여 촛불을 들었고 노동조합은 징계위원회를 막아섰다. 그러나 국민과 후대를 위해 큰 용기를 낸 연구자의 양심에 이명박 정부는 끝내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그 후 수 년간 노골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연구과제에서 배제당하고, 인사평가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고, 심지어 양심선언이 잘못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명의 글을 쓰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연구원에 대한 정부의 보복은 실로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것이었지만 김이태 박사는 모진 탄압을 끝내 이겨냈다.

김이태 박사가 야만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동안 노동조합과 일부 언론은 김이태 박사를 복권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국회의원들이 같은 주장을 반복했지만 번번히 묵살됐다. 필자도 5년 전 이와 관련한 컬럼을 통해서 김이태 박사가 당하고 있는 갖가지 불이익 조치를 거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징계를 철회하고 그가 연구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연구원으로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고 4차례의 감사원 감사 결과 4대강 사업은 김이태 박사가 문제를 제기한 것과 같이 국토의 대재앙을 초래하고 사상 최악의 혈세를 낭비한 범죄로 드러났다. 이러한 때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스스로 김이태 박사의 양심선언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징계 처분을 취소한 것은 4대강을 복원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연구자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하는 의미도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김이태 박사가 10년간 받은 고통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함께 나누고 기리는 일이다.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공익제보자들이 외면받거나 탄압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출연연구기관이 정권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도록 하는 것, 연구자 개개인이 관료적 통제에서 벗어나 학문적 양심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4대강 사업처럼 잘못된 정부 정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도 남은 일들이 있다. 뒤늦게 일부 보의 수문을 열기도 하면서 대책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4대강을 제대로 살리고 복원하는 일에 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옹호하고 김이태 박사를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붙였던 관변의 교수와 학자들은 통렬히 반성하고 김이태 박사에게 진정으로 사과해야 한다.
연구자로서 양심을 지키기 위해 고행의 길을 걸어온 김이태 박사와 이와 비슷한 시련을 겪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당신들은 정녕 이 사회를 썩지 않게 만드는 소금이고 길을 이끄는 등대와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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