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선생님, 오늘 여기까지만 하시죠?!” 수업을 방관하던 아이가 꼭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이 알아서 할게.” 이 말이 화근이었다. 수업활동에 소극적인 아이에게 해 보기를 요청하면 내가 한 말이 반사돼 돌아온다. “아, 선생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수업은 일절 듣지 않고 저희끼리 웃으며 장난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말을 건다. “선생님, 얘가 때려요.” “응, 왜 맞아?” “선생님, 얘가 자꾸 말 걸어요.” 분명히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왜 걸려?” 딱 잘라 말해버리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는다.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는 이내 할 말을 잃는다.

수업을 방해해 여러 번을 지적해도 말을 듣지 않는 학생에게 “제발 방해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해 줄래?” 어르고 달래다 최후통첩으로 정색하며 극존대 화법을 쓴다.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네, 알았어요. 잘 할게요.” 이제 재미없다는 듯 책상에 엎드려 버린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저 졸업하기 전에 선생님 수업하시는 목소리 녹음 좀 해 가도 될까요?” 꽤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졸업하고 잠 안 올 때 들으면 정말 잠이 잘 올 것 같아서요.” “야, 너희들 중에 선생님처럼 동시에 수십 명 재울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자조적으로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지만 마음이 무겁다.

수업 중 교사의 말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투입될까. 회의적이다. “누가 말하는지에만 너무 신경쓰지 말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우선은 잘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 선생님들과 자주 부딪히는 학생에게 해주는 조언이다. ‘교사의 말’이기 때문에 잘 안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 중 교사의 말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겠구나. 그렇다면 말을 줄이고 학생들이 몸과 감각으로 기억하고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수업은 어떨까.’ 그래서 다양한 교수학습모형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겠다.

학생과 교사 모두 서로의 말을 얼마나, 어떻게 듣고 있는 것일까. 듣기활동이 일상 언어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데, 가장 어려운 일이 또한 듣기라니, 참 잘 듣기 어렵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태도가 결국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나돌게 하는 것은 아닐까.

초등학교 2학년 막내아이가 말한다. “엄마,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요.” 곧바로 발끈했다.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면 먹는 거, 입는 거, 잠잘 곳 스스로 다 해결해 봐. 그럴 수 없으면 다음부터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그런데 교사와 학생 모두 서로가 없이 무슨 일을 하며, 부모와 자식은 또 서로가 없이 무엇으로 부모, 자식이라 한단 말인가.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을 서로 기특하게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직무유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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