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봐왔던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잔상들을 찬찬히 떠올려 봤다. 얻어진 결론은 ‘말’이었다. 정치인에게 말이라는 단어가 주는 절대성과 중요성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말로 대중들에게 상처를 주고, 말로 스스로가 망하고, 말로 스스로가 흥하고, 흥망성쇠가 정치인의 말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특별시민’ 시사회에서 배우 최민식은 3선의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변종구 역을 연기한 것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오랜 암 투병 끝에 지난 8월 25일 81세를 일기로 사망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면 과감하게 그 길을 택했다. 당과 다른 소신을 밝히는 데도 거침없었고, 공화당 내에서 그는 독불장군이나 이단아란 뜻의 ‘매버릭(maverick)’으로 불렸다. 그래서 같은 당 소속 인사들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반대당 정치인들도 매케인 의원을 존경했다. 정파를 따지지 않고 원칙과 소신에 바탕을 두고 행동했던 그의 일생에 대해 미국의 모든 방송과 신문매체들이 경의를 표하며 애도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전국에는 반기가 게양됐고 추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최근 충남을 대표하고, 공주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의 말이 화두가 되고 있다. KTX 세종역 신설을 두고 한 발언이 민심에 불을 지폈다. “세종역은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양승조 충남지사의 발언은 화약고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충북은 물론 공주지역의 민심까지 흉흉하다.

“공주시의 입장 표명이 별 효과가 있겠냐?”고 밝힌 김정섭 공주시장의 어정쩡한 발언 또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KTX 세종역 신설과 관련해 “공주시가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피력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줄지 의구심이 든다. 세종역 신설로 인해 공주역의 운행편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니 적극적인 입장을 내는 것은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고 밝혀 듣는 이들의 귀를 의심케 했다.

무책임은 무능력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충남 유일의 호남고속철도 신설역으로, 유령역 오명을 쓰고 있는 공주역을 활성화시켜야 할 두 정치인의 화법치고는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두 정치인이 세종시장과 세종을 지역구로 둔 당 패표에 기대 무엇을 얻고자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지역민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지는 못할망정 민폐를 끼쳐서는 곤란하다.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았으면 한다.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천안-공주-익산으로 이어지는 당초안이 채택됐더라면 도심과 한참 떨어진 신영리 허허벌판이 아니라 세종지와 인접한 월송동 쯤에 역사가 건립돼 접근성 부족을 걱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호남정치철도’ 또는 ‘호남완행열차’라는 수식어가 정치인들로부터 기인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더구나 호남고속철도계획은 지난 2006년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을 이유로 경부·호남 KTX 분기역은 천안역에서 오송역으로 변경 결정됐고, 오송역은 세종시의 관문역할을 하는 것으로 계획됐던 만큼 지금의 세종역 설치 주장은 균형발전차원에서 뜬금없다.

말은 마음의 창이자,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오재순은 순암집(醇暗集)에서 ‘말로 마음이 드러나니 길흉, 선악이 여기서 드러난다. 이로써 성인은 말을 삼가라’고 경계했다. 옛 속담에 ‘군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말이 있다.

말을 이것저것 많이 늘어놓아도 군말이면 쓸 만한 말은 별로 없으니 말을 삼가라는 뜻이다. 정치인의 말은 대중을 향해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

말 한마디가 자신을 띄우기도 하지만,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만큼 양날의 칼인 셈이다. 두 정치인의 ‘유체이탈화법’이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민의 소리가 무엇인지, 지역민의 바람이 어디에 있는지, 지역민을 위한 공공의 이익은 무엇인지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