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자 본보 10-11면 와이드 지면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옷깃은 자연스럽게 더욱 여미게 된다. 매미소리와 함께 합창으로 어우러졌던 풀벌레소리는 이제 독주로만 울림의 자리를 채운다. 신록 역시 슬슬 빨강과 노랑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비교적 북쪽에 위치한 대청호엔 가을이 오는 움직임이 더욱 빠르다. 추수의 계절이 끝나면 이제 올해 대청호의 신록을 볼 수 없다. 이제 막 화장을 고쳐가는 대청호가 기대되면서 동시에 한 계절 더 늙어가는 대청호가 아쉬워진다.

◆ 가을장마로 신록 닦아내는 대청호의 8구간
대청호오백리길 8구간의 시작은 7구간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부소담악에서 시작한다. 작은 금강인 부소담악의 깎아지른 절벽 병풍을 뒤로 하고 시작되는 8구간은 약 16㎞, 대략 6시간 코스다. 가을장마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지만 대청호와 함께 만들어낸 하얀 입김이 부소담악을 타고 7-1구간의 고리산까지 이어진다. 빗방울과 대청호에 앉은 긴 안개가 용오름이란 표현이 생각날 정도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8구간의 이정표를 자처한다.

부소담악의 끝자락에 앉은 큰 새가 먹이라도 발견한 듯 큰 날개를 펼치면 용오름의 기체를 관통하며 날려버리지만 대청가을장마와 대청호가 만든 아름다움까진 헤치진 않는다. 방아실 낚시터부터 시작된 작은 왕복 2차선의 작은 도로가 대청호를 끼고 이어진다. 얼마 가지 않아 8구간의 첫 갈림길이 나온다. 충북 옥천 군북면 환평리로 이곳에선 간단하게 환평리마을이라고 부른다. 환평리는 과거 고무실이라 불렸던 곳이다.

대청호오백리길의 7-1구간인 고리산이 환평리 바로 배후에 위치해 고리산의 전설이 이 마을에도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고리산엔 배를 매는 큰 고리가 있는데 과거 큰 비가 내려 여기에 배를 자주 묶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가 올 때마다 고리에 가장 가까운 고무실을 찾으라고 한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고무실이란 이름보다 큰 고리가 유명해져 고리실이라 불렸고 인근 고리산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과거엔 유명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여느 대청호의 마을처럼 세대수가 많지 않아 굉장히 조용하다.

이따금 내리는 빗방울이 안개를 뚫고 대청호를 때리는 소리, 조용히 흙바닥에 내려 앉아 땅 속으로 숨는 소리, 풀벌레의 이슬이 되고자 잡초의 잎사귀에 앉아 미끄러지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귓가를 간질인다. 마치 신록으로 화장한 여름이란 겉모습을 지우고자 가을장마는 그렇게 내리나보다. 환평리를 지나면 곳곳엔 빨강으로, 그리고 노랑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8구간을 벗어나 국가생약자원관리센터로, 그리고 가을의 문턱으로 잠시 외도를 해본다. 이곳에서 신록은 그저 불편한 외지인이다. 시간의 흐름을 빨리 잡아당긴 듯 빨강과 노랑의 형형색색이 오히려 주인 행세를 하며 자신이 조만간 오겠다고 시위라도 하듯 고약한 은행 냄새를 빗물까지 뚫고 슬슬 퍼뜨린다. 수확의 기쁨이라는 희열을 기다리는 농민을 위해 벼 역시 한창이나 노랗게 익어가며 이제껏 젖줄이 돼준 대청호를 향해 목례를 한다.

소옥천 생태습지
소옥천 생태습지

◆자연 벗 삼아 공부하던 양반들의 학교
환평리, 옥천약용식물재배시험장, 그리고 국가생약자원관리센터를 지나 아스팔트도로에선 이색의 광경이 펼쳐진다. 대청호에 거주하는 작은 개구리 떼들이 장마로 멱이라도 감듯 모두가 뛰쳐나와 작디작은 온 몸으로 장맛비를 마주한다. 비를 피해 나무 아래 모여든 나그네들은 신경도 안 쓰며 말 그대로 안중에 없듯 조용히 눈을 감아 순간의 행복을 즐긴다. 개구리 옆엔 거대한 달팽이들이 새로운 터를 찾아 대규모 이주를 준비한다. 쏟아지는 빗방울에 등에 멘 큰 짐이 무겁기라도 한지 그들의 이주는 규모에 비해 너무나 느리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대청호 곳곳에선 너무나 평범한 일상인가보다. 누구에겐 평범하지만 우리에겐 신비한 장면을 보다 보면 어느새 충청도 양반들이 학문을 갈고 닦았던 이지당이 나온다. 정면엔 서화천이, 뒤편엔 양반을 상징하는 푸른 소나무가 이지당과 함께 삼위일체로 조촐하지만 무게 있는 분위기를 내뿜는다. 이지당은 들어가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작은 방과 모여도 너무 좁아 할 게 없는 마루가 구성된 본채, 2층 높이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별채로 이뤄졌다.

충청의 대표 인물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과 중봉 조헌(重峯 趙憲)이 지역의 유능한 인재들을 데리고 학문을 논의하던 곳이다. 원래는 이곳의 옛 명칭 ‘각신마을’의 이름을 따 각신서당이라고 했으나 훗날 송시열이 시전(詩傳)의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두 문장의 끝인 ‘지(止)’가 두(二) 번 들어간다고 해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짧은 거리지만 이지당으로 향하는 길은 데크로 이어지는데 조선시대의 건물과 현재의 기술이 합쳐졌음에도 위화감은 없다.

이지당 앞에 서면 대청호로 이어지는 작은 서화천에서 흐르는 물소리, 잎사귀를 때리는 나뭇잎 소리로 심신이 차분해진다. 과거 지역의 인재들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라면 신경이 곤두서며 자연스럽게 수 시간이나 집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머리가 지끈해지면 마루로 나와 처마를 타고 내려오는 빗줄기 소리를 듣고 별채로 올라가 손으로 나뭇잎을 따 작은 찻잔 속에 얹어 잠깐의 휴식을 즐겼으리. 잠시 비를 피하고자 한 이지당에서 하염없이 빗줄기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긴 명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8구간의 마지막 석호리에서 바라다 본 대청호
'가을빛 물든' 국가생약자원관리센터 가는 길

◆마지막 관문 소옥천
이지당에서 한껏 지혜로움을 흠뻑 채우면 8구간의 절반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이지당을 다시 나와 서화천다리를 건너 지오리마을로 향한다. 지오리마을까진 계속 서화천을 왼쪽에 끼고 편안히 걸을 수 있기에 지친 발걸음을 천천히 놀릴 수 있다. 약 30분 정도 서화천과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서화천의 자리엔 소옥천이 자리한다. 소옥천은 금강권역의 금강 수계에 속하며 금강의 제1지류다.

대청호로 흘러들어가는 상류하천이다. 충청의 젖줄인 대청호의 초입이라 할 수 있다. 식수로 이용되는 대청호로 흐르는 물의 마지막 관문인 만큼 이곳엔 3만여㎡나 되는 너른 들판에 생태습지가 조성, 온갖 수질정화 식물이 식재됐다. 대표적으로 대청호오백리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갈대, 부들, 달뿌리풀, 물억새, 꽃창포, 노란꽃창포, 수련, 노랑어리연꽃 등이다. 소옥천의 물들은 침강지와 깊은 습지, 얕은 습지, 생태침강지 등을 거쳐 식재된 식물의 수질정화를 통해 깨끗한 물로 다시 태어나 유입된다.

특히 깊은 습지엔 거대한 분수로 물의 움직임을 최대화시킨다. 하루 2만 톤 가까운 물이 이곳에서 새단장을 한다. 단순한 정화시설이라고 하기엔 수질정화식물과 거대한 분수 때문에 하나의 생태습지공원같은 모습이다. 전망 좋은 관찰데크, 산책이 가능할 정도의 깔끔한 관리동선 등은 생태습지공원에 볼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 때문에 곳곳엔 물고기를 잡으려는 강태공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생태습지를 나와 이평리로 향하면 대청호오백리길 8구간의 종반에 접어든다. 이평리와 석결마을로 향하면작은 숲길이 나온다. 숲길은 길진 않지만 제법 울창해 빗방울이 뚫지 못한다. 곧바로 나오는 석호리를 넘으면 출발 때 잠시 얼굴을 내밀고 꼭꼭 숨어있던 대청호를 마주하게 된다. 비록 하루도 안 지난 짧은 시간이었지만 출발할 때 봤던 대청호와 도착할 때의 대청호는 달라져있다. 그 사이에 가을이란 옷을 또 걸쳐 입었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정재인 기자
영상=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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