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대전글꽃초 교사

분주했던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활기찬 시작은 통합교과 ‘가을’과 함께 한다. 가을의 첫 단원은 ‘동네 한 바퀴’이다. “우리 동네 한 바퀴 돌아볼까 이 골목엔 뭐가 있을까 행복한 우리 동네 좋아요.”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처럼 아이들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새 단원을 시작한다.

1~2학년군에 적용하고 있는 통합교과 교육과정은 저학년의 발달 특성을 기초로 한 교육과정, 활동 중심의 생활 영역으로 구성된 교육과정, 학생들의 생활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과정이다. 그래서 반드시 통합교과는 학생의 흥미나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이를 교과로 이어주는 방향으로 접근한다.

즉, 학생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관심과 흥미를 우선시하며, 자연스럽게 탐구하고 표현하면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과인 것이다. 학생이 실감하고, 경험할 수 있는, 해결할 수 있는, 체험할 수 있는 형태를 중심으로 통합교과다운 통합을 늘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실이 교과서와 시간표가 그 중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해지고 짜여진 시간표대로 교과서를 집어넣었다 꺼냈다 한다. 교과서의 한 페이지라도 넘어가게 된다면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불편함을 마주한다. 3년간의 캐나다 생활에 두 아이를 밴쿠버의 헤이젤그로브초등학교에 2년간 보내게 됐다.

이 학교는 공립학교 중에서도 학습의 질이나 양에서 우수한 초등학교로 평판을 얻고 있었다. 교사이며 학부모인 나에게 이 같은 위상을 갖추고 있는 이 학교의 수업시간표를 들여다보는 것은 곧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우수 공립초등학교의 교과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헤이젤그로브를 통한 캐나다 초등학교 교과과정 들여다보기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수업시간표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수업시간표와 교과서를 보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수업시간표가 없다? 교과서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이 교실을 방문했을 때도 한국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업시간표는 교실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두 아이의 2년간의 학교생활을 지켜보면서 나는 교사로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됐다.

그곳의 교사는 곧 교육과정이었고, 교과서였다. 교육청에서 제시한 학습 프로그램의 목표대로 학생들의 삶 주변에서 주제를 찾고 통합하여 구성했고 내실 있게 운영했다. 틀이 돼버리는 교과서의 내용과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반 학생들의 삶이 그 중심이 되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반 교실에 우리 동네 큰 지도를 붙였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내가 탐구할 곳을 정하고, 직접 가보고, 인터뷰하고, 우리 마을을 홍보하는 캐릭터도 만든다. 지도 위에 내 사진도, 내가 조사한 내용도, 내가 그린 그림도 점점 붙여가며 우리 동네 한바퀴 단원을 공부한다. 내 가장 가까운 내 삶에서 시작하는 제대로 된 통합 수업으로 오늘도 아이들과 행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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