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북방민족과의 전쟁 ④

아모르는 용트림을 한번 하고 바칸의 막사를 뛰쳐나갔다. “아모르, 그렇다면 내일 새벽에 출정하라! 그 때는 내가 앞장서겠다.”

바칸이 아모르의 뒤통수에 대고 옹색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모르는 못들은 척 하고 바로 말위에 뛰어 올라 군대를 통솔했다. “진격, 진격하라! 바칸이 내게 지휘권을 주었다.”
거짓으로 바칸의 통솔권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아모르는 바칸을 뛰어 넘고 싶은 욕망이 강렬했다. “……” 적막한 겨울밤 하늘로 말들이 내뿜는 입김이 옹골차게 피어올라 빠르게 흘러가고, 뒤 따르는 보병들의 발자국 소리가 곤하게 잠든 대지의 단꿈을 헤살 놓았다. “놈들이 온다!”

아모르가 통솔하는 군대가 대망새의 진영을 향해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자 팬주룽의 척후병이 쐐기같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억~’하고 쓰러졌다. 적을 발견한 척후병은 급하게 본진으로 달려가고자 했지만 워낙에 빠르게 내닫는 아모르의 말발굽아래 깔리고 말았다. 뒤이어 서있던 척후병도 아모르의 기습을 목이 터져라 알렸다. 그러나 그 마저도 말발굽에 짓밟히고 말았다. 봉수대처럼 연이어 알리는 소리는 세 명의 척후병을 희생시키고, 검은 꼬리를 매단 불화살 신호가 오른 다음에야 본영에 전달됐다. “놈들의 기습입니다. 바가나치!” 푸른돌이 비상령을 내리자 무작스럽게 두들겨 패는 북소리가 진영을 뒤덮었다. “모두들 침착해라! 작전대로 움직인다. 불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라!”

대망새의 명령에 오천의 군사들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단 십분도 안 되어 푸른돌이 고안한 진을 갖추고 적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책 오백 보 앞으로는 산 같은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뒤로 기마병들이 말의 얼굴에 삼베가면을 씌우고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목책의 양 옆으로는 화살부대가 배치되었고, 목책 앞으로는 기습부대, 목책 안쪽에는 최후의 보루인 보병부대가 백성들을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푸른돌의 전략이었다. 이는 방어를 위한 최선의 진법이었다.

팬주룽에 대한 사전정보도 미흡했고 푸른돌의 전법을 알 리가 없는 아모르가 도끼자루를 휘돌리며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말들이 산처럼 치솟은 불기둥을 보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아무리 채찍을 휘갈겨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아모르의 기병들이 채찍을 옴팡지게 휘두르자 말들은 새된 소리를 질러대며 길길이 날뛰었다. “활을 쏘아라!”
소리기의 명령에 화살부대의 화살이 불길 너머로 쏟아져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싸늘한 겨울밤 하늘을 갈라놓았다. 때맞춰 눈이 펑펑 내렸다. 바람 없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들은 물기를 머금어 소복소복 쌓였다. 눈 위로 떨어지는 아모르 병사들의 피가 검붉게 괴이고 있었다.

백여 명의 병사들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있었지만 아모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독기가 올라 피 맛을 본 야수의 본능으로 으르렁 대고 있었다. 과연 대륙을 호령하던 전사다운 기백이었다. 아모르는 날아드는 화살을 도끼로 쳐내며 대망새의 진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다른 기마병들도 거침없이 아모르의 뒤를 따랐다. 기마병들이 달려오는 모습은 한 겨울 북풍을 타고 몰아치는 싸락눈 같았다. “……”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보병들의 발소리가 목책 앞에 다다를 즈음 도끼를 휘두르던 아모르가 쾌재를 불렀다. 하늘을 향해 타닥타닥 치솟아 오르던 불기둥이 물기를 잔뜩 먹고 쏟아져 내리는 눈송이에 묻혀 검은 재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모르는 태풍 같은 기세로 말을 몰고 들어가 일시에 쓸어버릴 작정이었다. 불의 장막이 없어지자 말들도 귀신처럼 빠르게 달려갔다. 아모르의 군사들이 질러대는 괴상한 소리가 대망새군을 움찔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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