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하고 퍽퍽한 현실 속 모습
해피엔딩 없는 씁쓸한 결말에도
희망과 봄이 오는 이유 담아내

 
 
▲고광률 소설가

그의 말처럼 현실이 소설보다 더한 세상이다. 그래도 소설이기에 끝엔 해피엔딩을 보게 될 것이란 일말의 믿음이 확신이 될 순 없었다. 책 속 세계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선악의 구도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굳건했고 주인공 역시 행복을 맛보기보단 씁쓸함과 좌절을 마주했다. 그래서 더 신선했고 책의 마지막 장을 쉬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고광률 소설가가 신간 ‘복만이의 화물차(도서출판 강)’을 펴냈다. 대리기사와 매필(賣筆) 등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나’는 시간강사다. 그리고 나에겐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학생운동 이력을 가진 복만이라는 친구가 있다. 한 때 나는 학생운동을 하던 그의 신념과 생각을 우러러봤으나 세상이 변해 각박하고 퍽퍽한 삶을 버텨낼 재간이 없던 복만이 결국 사회에 순응하자 썩 편치만은 않다. 그는 나의 누이동생과의 행복을 꿈꾸며 결혼 했으나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손가락 절단으로 얻은 산재보험금은 아내 위자료로 지급하고는 공장 생활을 접었다. 생계는 이어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복만이 화물차로 업종을 바꾸자 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둘 사이에 참 얄궂은 운명이 놓여있다는 서글픔만 든다.

그럼에도 봄(春)은 온다. 소설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중편 ‘영춘’에서 사채 수금원의 독촉을 견디다 못한 친구가 모항으로 가 짧은 생의 마감을 암시할 때 우리는 그가 결국 세상을 떠날 걸 다 알게 된다. 그 친구의 이름이 영춘인 것도, 중편의 제목이 영춘(迎春)인 건 이렇게 힘든 세상이라도 결국엔 봄이 올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진리가 있기에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함을 알려주고자 하는 소설가의 심중이 담긴 것일 게다. 그래야만 소설이 가진 의미를 찾고 그제야 책을 덮을 수 있다. 두 편의 작품을 비롯해 ‘깊은 인연’, ‘포스터칼라’, ‘순응의 복’, ‘밥’을 담은 신간에 대해 고원정 소설가는 “봄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 없이 날고기 피비린내 가득한 고광률의 소설을 차마 덮을 수 없다”며 “한국 문학은 참으로 ‘독한’ 리얼리스트를 하나 가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1961년 충북 청주 출생의 고 소설가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으며 지난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과 1991년 ‘아버지의 나라’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활발한 문단 활동을 높이 평가받아 지난 2012년 호서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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