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신장(燕行贐章). 충남역사박물관 소장

1798년 정조는 이조원(李祖源)을 정사로, 김면주(金勉柱)를 부사로, 서유문(徐有聞)을 서장관으로 하는 삼절년공겸사은사행(三節年貢兼謝恩使行)을 꾸려 청나라 연경으로 파견하였다. 이 사행은 이해 10월 19일부터 이듬해 4월 2일까지, 160일 간의 여정이었다. '연행신장'은 이 사행 길을 떠나는 김면주를 위로하여 동료와 일가친척들이 쓴 송별시를 엮은 첩으로, 건·곤 2첩이다. ‘건’에는 김면주의 동료 12인이 쓴 12편의 시, ‘곤’에는 14인의 일가친척이 쓴 15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각양 색상의 고급 종이에, 이만수, 남공철, 성해응 등 당대 유명인사의 친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여기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먼 길을 떠나는 김면주의 노고를 위로하고 무사귀한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눈여겨 볼 것은, 중국에 대한 조선인의 예전과 전혀 다른 인식이다. 그 원인은 중국을 지배하는 청나라가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황폐화시킨 오랑캐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 황조 명나라에게 보인 사대적(事大的) 관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때문에 남공철은 시에서 청나라가 결국은 절로 사라질 것이고, 그들의 장대한 계획 역시 어리석고 교만한 것이라며, 청에 대한 반감과 소멸에 대한 염원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이 외에 여러 시에서 청나라는 ‘오랑캐’나 ‘승냥이’로 비유되었으며, 그들의 변발을 비꼬아 황제도 ‘머리털 깍은 황제’로 표현하였다. 한편으로는 청나라에 보내는 진상품으로 탕진되는 국고를 우려하는 등, 약소국의 원통한 심정도 도처에 묻어난다. 이는 자연적으로 명나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귀결된다. 전반적으로 모든 시가 우울한 정서로 가득하다. 그러나 삼전도의 굴욕을 되새겨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다짐도 눌러썼다.

지금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외교가 강대국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과 같은 국제질서를 조율하는 기구가 있는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약육강식의 봉건사회는 어땠겠는가? '연행신장'에는 선량하지 못한 강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그들 면전에서는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약소국 조선 지식인 관료의 불만과 억울함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끝으로 청나라의 멸망을 바라는 남공철의 송별시 중 일부를 옮긴다.
但誇威靈拔全遼 요동에서 일어나 위엄을 과시하지만 / 誰知海內自鑠銷 누가 알랴, 해내에서 절로 사그라질 줄 / 財力盡輸寧古塔 재력을 모두 영고탑으로 옮기려 하는데 /長策但見愚而驕 장대한 계책은 어리석고 교만할 뿐이네 / 黃花謠唱紅花委 홍화 지고 황화 핀다는 노래가 있고 / 漢宮袍帽徵戱子 한나라의 도포와 모자 광대에게서 볼 수 있네.

장을연(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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