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전
충청남도의회사무처
입법지원담당

"형님!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윤 계장이 어리광을 부리면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고, “과장님은 10년 전과 비교해도 변함없이 여전하시네요”하며 장 계장은 맑은 미소를 보냈다.

퇴근시간으로 인해 20분 거리의 약속장소까지는 멀고도 험했다. 동대전 TG로 진입, 경부와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유성 TG까지 달린 시간은 불과 10여 분이었지만 약속시간인 7시를 넘어서야 도착했다.

팔보채와 소주를 주문해 놓고는 대화가 시작됐다. 중후한 경한 씨와 아름다운 경애 씨를 바라보자 옛날의 모습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경한 씨를 만난 것은 26년 전인 아산군청 새마을과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경한 씨는 총각이었었고 물론 나 역시 결혼하기 전이었다.

새마을사업이 한창이던 그 시절, 대전이 고향인 경한 씨는 새마을교육생을 인솔해 유성에 있던 농민교 육원에도 들락거리곤 하였지만, 인연이란… 지금 대전시청에 근무하는 경한 씨의 형님과는 아산군에서 한 번, 충남도청에서 두 번 같은 부서에서 만나 근무했다. 그 때 경한 씨 아버지는 제1대 유성구의원에 당선되셨고 이어 제2대 의원시절에는 의장(議長)까지 지내셨다.

경한 씨는 공주시를 거쳐 ‘유성구청에 근무하고 있다.’며 전화도 걸려와 한 번쯤 만나 식사나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늘상 머리를 떠나지 않았었다.

아름다운 경애 씨를 처음 본 것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원1회방문처리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시절, 연기군청에서 근무하던 경애 씨는 같은 업무를 맡음으로 인해 통화도 자주하게 되었다. 외모는 물론 맘씨마저 예뻣던 그녀는 연기군청의 꽃이었다. 그 후, 다른 부서로 옮겨서도 출장 시마다 그녀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곤 하였다.

그 시절 경애 씨의 시아버지는 충청남도 도의원을 거쳐 조치원신용협동조합 이사장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정치판에서 그녀의 시아버님을 그냥 놔두지를 않았다. 시어머니와 그녀는 군수에 출마하면 호적을 판다며 으름장도 놓았지만 결국 연기군수에 당선, 제32대 연기군수로 취임해 제33대까지 연임을 하셨다.

그런 그녀가 언뜻 머리를 스쳐간 것은 하늘이 맑고 높던 지난해 가을이었다. 연기군청으로 그녀의 근무처를 물어 유성구청으로 전출한 것을 알았고 유성구청으로 전화를 걸고서야 아름다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소중하던 의장 아드님과 군수 며느님을 지금 같은 자리에서 앉아 대화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흐뭇하였다. 지금은 조금 살이 오르고 중후(重厚)한 모습을 제외하면 경한 씨와 경애 씨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날 저녁은 그렇게 소중한 자리는 오래도록 옛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식당을 나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말에 장 계장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고는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車)안에서 지난 세월을 뒤집어 보았지만 장 계장의 하얀 미소만이 맴돌며 머리를 스쳐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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