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대전을 가장 대표하는 인물을 지목하자면 누가 될까. 우선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손꼽힌다. 또 사육신의 한 사람인 취금헌 박팽년을 지목하기도 한다. 이 외에 단재 신채호 선생을 지목하기도 한다.

우암은 외가인 옥천에서 태어났지만 옥천의 인물이라 하지 않고 대전의 인물이라고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도 외가인 대전 어남동에서 태어났지만 고향은 청주 낭성면으로 기록된다.

충청 유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사계 김장생과 그의 아들 신독재 김집 선생은 광산 김 씨로 그의 자손들은 논산 연산면을 기준으로 그 일대를 터전 삼아 대를 이어가며 살았다. 서포도 그들의 후손 중 한 명이다.

사계의 증손자, 신독재의 손자가 서포 김만중이다. 서포는 서울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그가 대전 일대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다. 대전 전민동에 그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서포 김만중은 교산 허균과 더불어 조선후기 우리 국문학을 이끈 인물이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소설을 쓴 대표적 작가이다. 서포는 우리 글로 창작한 작품이라야 진정한 우리의 문학이라는 주장을 펼쳤던 인물이다.

서포 김만중은 문학에서 중국을 벗어난 우리 문학을 구현하고자 했다면 그림분야에서는 겸재 정선이 중국의 화풍을 벗어난 우리의 그림을 그리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추사 김정희는 서예작품에서 같은 시도를 했다.

서포 김만중은 남해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했다. 남해군은 서포의 생애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한편 외지인들이 그를 남해출신으로 오인할 정도로 다각적이고 집중적으로 스토리텔링을 엮어내고 있다.

대전은 서포 김만중과 관련된 아무런 스토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서포는 대전의 대표적 인물이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인물 한 명에 대해 스토리를 입히면 엄청난 문화자원이 된다.

대전은 대표적 관광지도 없고, 대표적 인물로 없고, 대표적 음식도 없는 도시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강하다. 타 지역에서 역사 인물이나 향토 음식을 개발한 배경을 보면 대부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나비라는 평범한 곤충에 이야기를 입혀 나비축제를 전국 대표 축제로 성장시킨 사례가 있는가 하면 허구의 인물인 홍길동에 이야기를 입혀 지역의 대표 아이콘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

이런 사례를 놓고 본다면 서포 김만중에게 스토리를 입히고 그를 대전의 대표적 인물로 띄우는 일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김만중은 누구보다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학자이자 문인이다.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한 문인이자 학자인 서포 김만중은 효의 표상이기도 하다. 효문화원을 유치하고 효문화축제도 개최하고 있는 대전이 서포의 스토리를 얹으면 더없는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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