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9일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572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5대 국경일(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포함) 중 하나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다.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시초이고, 1928년 ‘한글날’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글은 표음문자(表音文字)로 누구나 배우기 쉽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지고, 디지털 시대에 적합해 한국인은 물론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글은 1962년 12월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한글 사용의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훈민정음 혜례본은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돼 한민족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됐다.

최근 국내외 국어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글은 천(天)·지(地)·인(人) 삼재, 음양오행, 발음할 때 혀·목구멍·치아의 모양, 오행방위도, 28수 천문도,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몽골어인 파스파문자, 가림토문자 등을 참고해 창제됐다. 한글은 자음 14자, 모음 10자로 구성돼 있고, 24개의 문자로 적을 수 있는 발음은 무려 1만 1000여 개로, 국어사전에 올라와 있는 단어 수만 51만 개가 넘는다.

언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적 웹사이트인 ‘에스놀로그’를 인용해 국립국어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한글은 세계에서 7720만 명이 사용해 13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언어로 나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글의 창제 과정과 창제 원리를 정확하게 밝히지 못해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한글을 외면하고 외국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은어·비속어·신조어가 범람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창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한글을 신미(信眉) 대사(1403~1480)가 세종대왕의 밀명을 받고 3개의 절을 옮겨 다니며 범어를 참고해 창제했다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해 국어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진옹(震翁) 월성(月性) 스님이 1975년 속리산 복천암 주지로 부임한 후 30여 년 동안 신미대사에 대한 사료를 모아 조사 연구한 결과, 신미대사가 세종대왕의 밀명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는 사실을 어렵게 밝혀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신미대사는 충북 영동 출생의 집현전 학사로 조선에서 유일하게 범어에 능통해 세종대왕의 밀명을 받고 복천암, 홍천사, 대자암 등에서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했다고 한다.

훈민정음 창제(1443)보다 8년 앞선 1435년 한글과 한자로 된 ‘원각선종석보’라는 불교 고서가 신미대사에 의해 출간됐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훈민정음은 28자와 33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에 종을 28번, 33번 친다. 그 이유는 하늘의 28수(宿)와 불교의 우주관인 33천(天)을 상징한다.

일제강점기 말에 한글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 사용이 강요되자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1942년 4월 서둘러 한글사전을 편찬하고 발간했다. 일제 경찰은 이윤재·최현배·이희승 등 33명을 검거하고 혹독한 취조를 해 투옥시켰다. 시인 윤동주는 목숨을 걸고 한글로만 저항적인 서정시를 쓰고,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검거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일제의 생체실험 대상이 돼 1945년 2월 2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한글은 우리 한민족의 얼과 혼이 담긴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우리글 한글을 지키고 가꾸는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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