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붕준 대전과학기술대 신문방송주간 교수
전 대전MBC 보도국장·뉴스앵커

추석이 지나면서 예식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이 달 주말과 휴일이 년중 결혼식이 가장 많다고 한다. 한글날인 어제도 예식장을 다녀왔다. 식장 입구에는 OO회사 OO회장, OO사장, OO대표 OO위원장 등 명의의 화환들이 즐비하다. 화환을 겉치레로 구경(?)하면서 혼주에게 다가가 얼굴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는 축의금을 내고 향하는 곳은 ‘식장’이 아닌 ‘식당’이다. 들어가니 다른 예식 하객들과 뒤섞여 시장 바닥(?)을 방불케 한다. 지구상에 예식장 가서 예식은 거의 보지 않고 밥만 먹고 오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혼주 자녀와 며느리나 사위 얼굴이라도 보기 위해 예식을 보자고 하면 대부분 손사래를 친다. 청첩장을 받으면 혼주 주소와 자신이 낸 축의금 액수를 별도로 기록해 둔다. 그리고는 추후 자신의 자녀가 결혼하면 똑 같은 방법으로 그 주소로 청첩장을 보낸다. 옛 말대로 상부상조다. 그러나 스마트 폰이 등장하면서 청첩이 모바일로 변해 날아(?)온다. 주소를 몰라도 전화번호만 알면 간단히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광고 전단지 돌리듯이 무차별 살포(?)도 한다. 모바일 청첩은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공적인 자리에서 명함만 교환하고 10년 이상 보지 않았는데도 보낸다.

예식장에 가지도 않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는데 당일 저녁 또 문자가 뜬다. ‘저희 여식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다. 가지도 않았고 축의금도 납부하지(?) 않았는데 감사하다고? 예식 후 확인도 없이 또 한번 재송(?)한 것이다. 축복해야 할 자녀 결혼이 돈(?)을 거두어 들이는 ‘쇼’로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회사 동료와 가까운 지인이라도 90% 이상이 밀려드는 청첩장에 부담을 느낀다는 표본조사도 있다. 오죽 부담이 되면 청첩장이 ‘지로 용지’로 보인다고 할까? 결혼식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쇼가 아닐텐데 청첩 문자를 보낸 후 일일이 전화로 참석을 종용하는 혼주도 있다. “결혼식 끝나면 언제 밥 한 번 같이해요!” 라면서…. 통화하고 생각한다. “언제 한 번? 글쎄! 언제가 언제일까?”

10여년 전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사회 현실적인 영화가 개봉했다. 그러나 요즘도 결혼식장은 붐빈다. 취업난에 살기도 더 어려워져 결혼 적령기를 넘긴 청년들은,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여유있는 부모, 할아버지를 잘 만나야 웨딩마치를 경험한다. 서울 고급 호텔의 결혼식 피로연은 음식(스테이크)값이 비싸, 자신이 먹은 밥값으로 1인당 최소 10만 원은 내야한다. 부부가 함께 가 10만 원만 내는 사람은 얄밉다는 얘기도 들린다. 결혼식장 밥 한 끼 때문에 벌어지는 씁쓸함이다. 결국, 고급호텔의 식장에는 가지않고 '봉투'만 보내는 것이 이익(?)이라고 파안대소 한단다.

예식이 끝날 때까지 참석해 축복해주는 진정한 하객들은 얼마나 될까? 정말 가까운 친지들만 모시는, 외국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작은 결혼식’을 곳곳에서 구경할 수는 없을까? 직계 가족과 정말 가까운 친구와 지인들만 참석하고, 하객 수도 양가에서 모두 합해야 30~40명 정도의 ‘작은 결혼식’은 분위기는 물론, 경비도 덜 들고 좋지 않을까? 그런데도 하객이 부족하다고 돈 주고 동원하는 혼주들도 있다.

대전에서 40년 이상 살면서 “자녀 언제 결혼시키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실은 두 딸을 3, 4년전 모두 출가시켰다. ‘작은 결혼식’을 했으니 지인 대부분이 알 리가 없다. 지인중에 “나는 초청 대상에 못 끼었나요? 섭섭합니다”라는 반응도 보인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절교’까지 선언하는 사람이 있을까? 몇 년 전 “내 자식 축의금 받았으니 나도 꼭 갚는다?” 틀린 말은 아니나 ‘작은 결혼식’을 택한 혼주의 상황을 알면 이해가 당연하다. 이에 반해 “내가 결혼식장을 얼마나 다녔는데…” 하면서 본전(?) 생각을 한다면 ‘작은 결혼식’은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의 ‘작은 결혼식’ 문화를 논하지 않더라도, 신랑 신부를 잘 아는 진정 가까운 분들만 초대한다면 모두가 행복한 축복의 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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