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공명은 산 위에서 불타는 반사곡을 굽어보다가 등갑군의 절규를 들으면서 그만 애간장을 도려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통곡은 전쟁의 화신 공명이 한 인간으로써 애증을 드러내는 통곡이었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던 공명이 마음을 가다듬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가 비록 병가로써 공훈은 이루었다 하나 반드시 나의 수명이 크게 줄어들고 말리라.”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장수들이 숙연해지며 말이 없자 조자룡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공명을 위로하기를
“승상! 천하는 생생유전(生生流轉)하는 법입니다. 낳고 죽고, 죽고 낳고 반복하는 것은 천지개벽 이래로 생명의 본연한 자세입니다. 황하의 큰물이 한번 넘치면 수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지만 그 물줄기가 원상으로 회복되면 곡식은 더욱 무성해지고 풍부해져서 인명은 더욱 번창해 집니다. 승상의 대업은 왕화의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저들이 운수가 사나워서 죽었지만 만토천재(蠻土千載)의 덕화를 남길 것이니 등갑군 3만의 죽음은 절대로 헛된 죽음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승상과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오호라, 자룡이 나에게 진실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었소. 내가 자룡의 말을 들으니 다소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오.”
공명은 눈물을 닦으며 자룡의 말에 대답했다.
필자는 이 두 영웅의 대화를 음미하며 과연 이들의 후손들은 어떻게 세상을 경영하며 살다갔을까? 라는 궁금증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제갈공명의 후손은? 조자룡의 후손은? 조조와 그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유비와 그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손권과 그의 수하 맹장들의 후손은 어떤 삶을 살다 갔을까? 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그 회답은 조조의 위(魏)나라를 지나서 사마소의 진(晉)나라를 거쳐 진무제 사마염의 대진통일시대를 조명하다보니 모든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AD304년 호지 흉노의 추장에 불과했던 유연이 팔왕(八王)의 난에 편승하여 거병(擧兵)을 하였다. 그는 산서(山西) 지방에서 흉노족을 이끌고 흉노국가를 재건하였다(漢: 前趙). 같은 해 저족인 이웅(李雄)은 사천(四川)에서 성국(成國)을 일으켰다. 이어서 서진(西晉) 왕조는 한(漢:유연)에게 수도 낙양(洛陽)을 빼앗기고 멸망하였다. 그래서 강남(江南)땅 건업에 망명정권이 탄생하였다(東晉:사마예). 그러므로 해서 흉노인 유요(漢:前趙)와 갈족인 석늑(조늑:後趙)은 서로 제 갈 길을 따로 따로 찾아가서 중원을 차지했다. 이 같은 사실을 다시 정리해 보면 5호16국(五胡十六國)이란 난세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5호란 사마소의 후손들인 팔왕의 골육상쟁에 결과물로 나타난 족속들로써 흉노. 저. 갈. 선비. 한족을 말한다. 그리고 16국은 한(유연:전조:흉노) 성(이웅:저) 후조(석늑:갈) 전연(모용준:선비) 전양(장무:한) 전진(부견:저) 후연(모용수:선비) 후진(요장:강) 서진(걸복국인:선비) 후량(여광:저) 남량(독발오고:선비) 북량(저거몽손:흉노) 남연(모용덕:선비) 서량(이호:한) 하(혁련발발:흉노) 북연(풍발:한)등의 군웅이 할거했던 소국과 대국을 모두 일컬어 말하는 것이다. 이제 그 5호16국 시대를 거치면서 변화무쌍하고 천변만화하는 역사의 뒤안길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역사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후조황제 석늑이 전조를 멸망시키고 유씨의 왕권을 중원에서 사라지게 하는 역사적 필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유비 현덕의 자손이 가졌던 왕권을 조운 자룡의 자손이 빼앗아 갔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오랜 숙원인 중원 석권을 조늑(석늑)이 이룩하게 되며 그 성공은 진시황제 한고황제 진무제에 이은 후조진성제의 4번째 통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진성제는 불과 4년 동안 황권을 지키다가 함화 8년. 태화 15년에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했다.
이 대하소설은 필자가 이미 본지 금강일보에 발표한 바 있는 제갈삼국지와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두 대하소설은 위진남북조시대를 총망라하여 재조명한 것임을 밝혀 두는 바이다.

- 대전 가장동에서 이순복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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