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북방민족과의 전쟁 ⑤

아모르의 군대가 목책 앞 삼백 보쯤 오자 소리기가 화살부대에게 명령했다. “일진은 불화살을 쏘고 이진은 맨 화살을 쏴라!”
긴 꼬리를 매단 둥근 불덩이들이 아모르의 기병부대 앞으로 날아와 푹푹 꽂혔다. 드넓게 피어난 불들의 꽃밭이었다. 기세 좋게 달리던 말들은 또다시 앞발을 허공으로 들어 올리며 기승을 부렸다. “이 때다. 맨 화살을 쏴라!”

소리기의 명령에 날카로운 검은 돌로 촉을 만든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또 다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기병부대는 그대로 적진을 향해 들이쳐라! 기습부대는 기병부대를 뒤 따라 달려가라! 보병부대도 기습부대를 따라 가라! 화살부대는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 놈들의 뒷덜미를 쏴라!”
소리기는 예정된 전법대로 명령을 내렸다. 명령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속속 이행됐다. 예정된 전법과 면밀한 명령에 따라 군사들이 움직였기 때문에 이 전투는 대망새군에게 매우 유리했다. 그러나 아모르의 기병들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더구나 아모르의 도끼를 막아낼 만한 장수도 없었다. 선봉에선 대망새의 기병들은 아모르의 기병들이 몰고 달리는 말의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목책이 무너지고 검맥질의 백성들마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상황이었다. “모든 부대는 후퇴하고 화살부대가 선두에 서라!”

소리기는 기병부대와 기습부대, 보병부대를 급작스럽게 후퇴시키고 화살부대를 전진배치 시켰다. 푸른돌의 전략이 먹히지 않는 상황. 이제부터는 일선에서 전쟁을 직접 지휘하는 장수의 임기응변에 맞길 따름이다. 병사들이 후퇴를 하자 소리기의 명령이 불기둥처럼 솟아올랐다. “화살부대는 놈들의 말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후퇴하라!”
대망새군의 화살부대가 쏘아 올리는 화살이 아모르의 말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화살은 말들의 몸에 속속 꽂혔다. 과녁이 컸기 때문이다. 화살을 맞은 아모르의 말들이 하늘을 향해 앞발을 들어 올리며 기병들을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주인 잃은 아모르의 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기병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화살부대는 활을 쏘고 양 옆으로 흩어져라! 기병들은 말을 몰아 놈들을 소탕하라! 기습부대는 적의 후방으로 돌아가라! 보병부대는 기병부대를 따라 적들을 섬멸하라!”

급조된 명령이 소리기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소리기의 전법은 신속하고 정확했다. 오천의 군사를 수년 동안 조련해온 소리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기술만큼은 대륙 최고라고 자부하던 북방인들이 팬주룽의 기병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말을 잃은 아모르의 기병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비에 젖은 개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아모르를 에워싼 수백 전사들의 기백만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그들이야말로 북방민족을 대표하는 전사 중의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도끼와 창이 대망새 병사들을 도륙내고 진영을 마구 흩어놓고 있었다. “아니, 저건 뭔가! 전세가 불리해지고 있다.”

대망새가 아모르와 그의 전사들을 발견했다. “배라기, 저대로 두면 우리 군사들이 모조리 도륙 나겠다. 어서 가서 저 놈들을 막아 내라!”
대망새가 자신의 친위대를 이끌고 아모르에게로 달려갔다. “병사들은 양 옆으로 물러서라!”
대망새가 소리를 지르며 병사들을 헤집고 들어갔다. 대망새의 병사들이 비실비실 양옆으로 흩어지자 도끼를 휘두르던 아모르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호랑이 가죽을 두른 대망새의 모습이 눈에 선연히 들어왔다. “저 놈들을 쳐라!”

대망새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소리기와 배라기 등 팬주룽의 전사들이 아모르의 전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소위 정예병들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전세는 백중지세였다. 선발된 전사들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대망새는 쉽사리 대적할 수 없는 적만을 골라 단번에 쓰러뜨리며 나아갔다. 그런데 소리기와 상대하고 있는 적이 눈에 띄었다. 아모르였다. 오천의 군사를 조련해온 소리기도 아모르의 공격을 버겁게 받아내고 있었다. “소리기, 물러서!”
대망새가 아모르와 맞서고 있는 소리기의 옆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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