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김영호 이사장

나이가 들면 돈도 명예도 아니고 신실한 벗이 최고라더니 퇴직하고서 고등학교 동창들끼리 훌쩍 떠나는 이른바 ‘방랑’의 재미가 쏠쏠하다. 금년에 대전, 예산, 부산, 용인, 남원, 광주를 방랑했고, 이번에는 군산에서 1박2일을 친구들과 함께 보냈다.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모이면 기타를 치며 합창도 하고, 또 구홍이 부자가 그린 친구들의 초상화를 증정하기도 하며, 지역의 풍물과 음식을 즐기는 틈틈이 역사에 대한 토론도 하며 나름 품격 있게 논다. 이번 모임을 주선한 군산의 내과의사 허영상은 “술과 여자 없이 새벽까지 생수를 마시며 남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 카페 만들기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우리 스스로가 참 남다르다”라고 경탄했다.

일본식 가옥 ‘여미랑’의 다다미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15년을 함께한 강아지 ‘별이’가 먹지도 않고 몹시 괴로워한다며 죽을까봐 두렵다고 울먹였다. 아내를 위로하면서도 내심 보낼 준비도 안 됐는데 어떡하지 걱정이 됐다. 집에 돌아와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먹지도 않고 엎드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게, 그동안 겪은 여러 어른들의 떠나시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자연사 하면 보문산 중턱 농사짓던 밭에 묻어줘야지 하면서도, 아내가 겪을 충격이 더 걱정됐다. 지인의 딸은 키우던 고양이가 죽은 쇼크로 쓰러져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간 ‘별이’가 병치레도 하지 않고 형제들 중 혼자 오래 살았으니 이번에도 잘 넘기겠지 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혹시나 해서 숯불구이 햄을 사다 작게 잘라주니 조금씩 먹어 괜찮겠지 하는 기대도 생겼지만, 이틀쯤 지나자 복수가 차오르며 숨이 거칠어지고 가끔 신음소리를 냈다. 밤새 걱정이 돼 새벽에 살며시 방문을 열고 ‘별이’의 숨소리를 살펴보면, 조용하다가도 다시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게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일주일을 넘기며 무척 힘들었지만 마음 한쪽에 떠오르는 안락사를 먼저 입에 올리진 않았다. 안아주는 걸 싫어하는 ‘별이’를 굳이 안으려다가, 으르렁거리며 물어뜯으려는 ‘별이’에게 “이 성질 나쁜 별이야, 너 언제 죽을래?”라며 노골적으로 타박하던 아내가 먼저 이별을 결심하길 기다렸다. 아내도 견디기 힘든 듯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더니, ‘별이’는 지금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그 고통을 줄여주는 게 우리의 도리라며 동물병원에 알아봤다. 병원에선 ‘별이’를 진단한 뒤 안락사 여부를 결정해 화장까지 대행해 준다 한다.

아내가 힘들어할까봐 내가 혼자 동물병원에 다녀온다 하니, 마지막을 함께하겠다며 ‘별이’를 안고 따라온다. 아내의 품에 안긴 ‘별이’는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밭은 숨을 몰아쉰다. 동물병원에서 ‘별이’를 진찰한 수의사는 안락사로 고통을 줄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고, 아내는 ‘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별이야, 잘 가!” 울면서 병원 밖으로 나갔다.

‘별이’를 잡은 간호사와 주사를 놓는 수의사를 이만큼에서 바라보니, 간호사도 훌쩍이며 울고 있고 주사를 맞던 ‘별이’는 마지막 작별인사인 양 꼬리를 흔들며 작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금세 조용해졌다. ‘별이’의 발을 가지런히 모아 옆으로 눕히고 청진기를 가슴에 대고 숨소리를 확인하던 수의사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다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파르르 떨며 떠나는 ‘별이’의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낀 옆방의 강아지가 내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노쇠한 ‘별이’는 신음소리도 낼 기력도 없이 혼신의 힘으로 꼬리를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난 것이다. 마지막 안간힘으로 작은 물똥 자국이 기저귀에 남았다. ‘별이’는 큰 기저귀로 온몸을 감싸고 반창고로 묶인 채 화장터로 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내 곁을 떠난 집안 여러 어른들이든 ‘별이’든 이별은 늘 힘겹고 애잔하다. 그러나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갈 수밖에. 아니 만물이 다 별이 폭발하며 나온 원소들로 몸을 받은 별의 자녀들이니, 우리 모두 다시 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별의 잔해들이 우주에서 떠돌다 다시 별로 환생하듯이, 우리 ‘별이’도 이제 별이 되었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