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있어 특별한 보통날’…20일부터 가을여행주간
‘도착’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여행이 추억으로 남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은 직장인의 로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일컫는 이 말은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설명한다. 현재 중장년의 아버지 세대는 몸이 부서져라 일해 성공하는 게 단 하나의 삶의 이유였지만 요즘 직장인들은 그렇게 일에 목숨 거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들에게 일은 삶의 이유가 아니라 단지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여가(餘暇) 활용법에 관심이 많다. 여가는 더 이상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인식된다. ▶관련기사 3면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여행(旅行)’ 만큼 가슴에 불을 지피는 단어가 또 있을까. 여행이 여가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으로 자리를 잡아 가면서 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행을 가능케 하는 시간과 돈 그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 거기서 뭔가를 얻으려는 마음이 총족된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특히 휴가나 명절 연휴를 활용한 해외여행은 봇물 터지듯 터졌다. 고성능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과 인터넷,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 ICT(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여행지 또는 관광지에서의 개인적 경험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한 사람의 여행은 또 다른 사람의 동기유발 요소로 작용한다. 요즘은 채널만 돌리면 해외여행정보 프로그램과 해외에서 촬영된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홈쇼핑 채널에선 매스미디어에서 유명해진 관광상품을 발 빠르게 만들어낸다. 우리나라 해외여행객 수는 조만간 30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여행을 위한 출국자 수는 2650만 명을 기록했다.

국내 여행도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2017년 기준 국민여행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여행경험률 90.1%)이 1년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했고 여행횟수는 1인당(경험자) 평균 약 3.7회에 이르며 11일 정도를 여행에 투자한다. 여행과 관련한 정보는 매스미디어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차고 넘쳐나니 떠날 여건만 되면 그냥 떠나면 된다.

이처럼 여행 혹은 관광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관광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려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서울과 제주, 강원 등 전통적인 여행·관광산업 특수지역뿐만 아니라 모든 지자체가 관광 인프라를 확대하고 스토리텔링을 덧대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전 동구의 경우 대전 자치구 중 처음으로 관광 분야를 ‘과’ 단위로 격상시키기까지 했다. 축제가 넘쳐나니 계절과 기호에 맞게 선택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소비의 대상으로 만든 관광산업의 발달 이면엔 여행의 본질을 잊게 만들었다는 부작용이 공존한다. 여행의 과정이 아니라 ‘TV·인터넷에서 본 그곳에 내가 있다’는데 더 큰 의미가 부여되면서 추억으로 남는 여행,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만나는 느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같은 가치를 잊은 채 그저 여행을 소비하게 됐다는 거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르스트는 “진정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참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고 했다.

오는 20일부터 내달 4일까지 ‘2018 가을여행주간’이 이어진다. 올해 여행주간 슬로건은 ‘여행이 있어 특별한 보통날’이다. 눈치 보지 말고 휴가를 내 떠나라고 정부가 판을 깔았다. 이끌리지 말고 참된 여행의 길을 의미 있게 만들어 보자.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