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앞둔 기대주

 

일시정지

이사 가는 날입니다

방이 빠르게 무너지는데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고여있습니다

먼지 가득한 수평선이 보입니다
그 바다는 오래 고여 있었지만
살아있습니다

손끝이 가리킨 곳은 바다 한 가운데
한쪽 방향으로
주름진 파도를 따라가면
입술이 움찔거립니다

바다가 흔들릴 때마다
빈방은 꿈꾸는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파도를 한 장씩 넘기면
색 바랜 물고기들이 누워있습니다

문을 잠갔습니다
내 몸에 누군가 들어갔다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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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혜린 씨

제14회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 공모전에서 한남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우혜린 씨가 ‘일시정지’로 시(詩) 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문인협회 계룡지부가 주관하는 사계 김장생 신인문학상은 조선시대 대학자인 예학의 종장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문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우 씨의 작품은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결합시키는 섬세한 언어 사용이 돋보인다”라는 호평을 받으며 열네 번째 공모전에서 시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양애경·박주용 심사위원은 “우혜린의 작품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어떻게 작용하고 반응하는지를 섬세히 그려내고 있다. 언어 사용이 정교하며 약간의 난해성을 갖고 있지만 작자 자신이 과장 없이 잘 통제하고 있다. ‘일시정지’가 특히 돋보인 것은 내면적 정서를 상상력을 통해 외부세계의 이미지와 합치시켰다는 데 있다. 오래 정들여 살던 방을 내놓고 이사 가는 날, 시적 화자는 허전함과 아득함을 느끼는데, 이것을 바다 이미지를 끌어들여 표현했다. 과장 없이 수수하게, 이만큼 독자를 끌어들여 시인 자신의 느낌과 비슷한 정서를 느끼게 하는 재능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평하고, 앞으로의 시작(詩作)에 기대감을 표했다.

우 씨는 “새벽처럼 어둡지만 맑게 표현 하는 시 쓰고 싶어 많은 물음표를 끌어안고 지냈다. 그 물음표는 세상을 향하다, 결국 제 자신에게 돌아왔다. 물음표는 펜으로 그려도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 시는 꾹꾹 눌러 그린 물음표다. 존재하는 것들은 모순이 있다. 그 모순들이 제 글의 재료다. 새벽처럼 어둡지만 맑게 표현하고, 꼭 그렇게 사는 것이 꿈이다. 이제 출발점을 겨우 지나간다. 놓여있는 곡선들을 유유히 걸어가며 더욱 크게 성장하겠다. 아직 부족한 글이지만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19일 오후 6시 30분 충남 계룡시 두마면 사계 고택에서 열리며, 우혜린의 ‘일시정지’ 외에 소설 부문은 박하의 ‘해미’, 수필 부문은 이진복의 ‘꼬뚜레 없는 소가 되어’가 당선작으로 결정됐다. 또 부문별로 특별상(시-송치훈의 ‘섬, 너를 보낸 후’, 소설-송우들의 ‘아로의 바다’, 수필-김애경의 ‘고양이’)도 수여된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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