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북방민족과의 전쟁 ⑥

(저 자는 낮에 본 자가 아닌데…….)
대망새는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소리기를 밀어냈다. 싸움을 빨리 끝내야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대망새의 창이 칼바람을 일으키며 아모르의 목을 향해 반원을 그리자 아모르가 고개를 살짝 숙여 재빠르게 피해냈다. 두 번째 창도 마찬가지로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내고 말았다. 세 번째 창이 아모르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아모르의 도끼가 창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말았다.
(보통 놈이 아니로구나.)

대망새는 창을 던져 버리고 도끼를 들었다. 도끼와 도끼의 쟁연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아모르의 도끼가 대망새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대망새는 슬쩍 피하며 오른발로 아모르의 머리를 걷어찼다. “어억!”
머리를 채인 아모르가 비틀거렸다. 대망새의 주먹이 비틀거리는 아모르의 명치를 찔렀다. 아모르가 무릎을 풀썩 꿇고 도끼로 몸을 지탱했다. 대망새의 발이 아모르의 머리를 향해 솟구쳤다. 마지막 정리를 하려했던 것이다. 순간 아모르가 몸을 번쩍 일으키며 대망새의 발을 막았다. 그리고는 도끼를 예리하게 휘둘렀다. 아모르의 도끼를 계속해서 피해내던 대망새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전세는 팽팽했다. 대망새는 과거 호랑이와 고다리의 싸움을 생각했다.
(이 자와의 싸움에서도 그렇게 많은 정력를 낭비해야한단 말인가.)

대망새는 고다리와 싸울 당시 본능에 따라 몸을 움직였던 상황을 떠올리며 아모르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 때처럼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모르만 또렷하게 보였다. 대망새의 몸이 혼령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모르는 물처럼 흐르는 대망새의 모습을 눈으로 잡아낼 수가 없었다. 대망새의 손과 발이 기계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어억!”
아모르의 내장이 불같이 뜨거워지며 시뻘건 피가 입으로 터져 나왔다. 대망새는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모르가 쓰러지자 상황은 아주 쉽사리 종료되었다. 소리기와 배라기 등 팬주룽 장수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반면 아모르의 전사들은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후퇴, 후퇴하라!”
아모르의 전사들 중 누군가가 후퇴를 명령했다. 후퇴를 알리는 북채들이 부러져 사방으로 튀었다. 자정께부터 새벽녘까지 이어진 그날의 전쟁은 마치 꿈을 꾸는 듯 길고 지루하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대망새는 후퇴하는 적군을 쫓지 않았을 뿐더러 부상당한 아모르마저 거두어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

“바칸! 주, 죽여주십시오. ” 아모르가 머리를 땅에 쳐 박고 바칸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뒤로 묶은 머리는 흩어져 면도날같은 새벽바람에 나부대고 있었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뒤덮어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아모르는 죽을힘을 다해 싸운 것이다. 하지만 대망새가 그들을 추격만 했다면 바칸의 진영은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남은 병사들은 몇 명이나 되느냐?”
“부, 부상 칠백에 팔백을 합쳐 천오백 명입니다.” 아모르는 처벌이 두려워 몸을 오들오들 떨며 심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고마운 일이로다. 그가 우리를 쳐 죽이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우리를 ?지 않았다. 이제 내가 왜 그와의 전쟁을 피하려 했는지 알겠느냐?”
“예, 바칸!”

“그는 어떤 사람 같더냐?”
“도무지 사람의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몸은 유령처럼 빨랐습니다. 그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그렇군! 그러나 이대로 후퇴를 할 수는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그와 싸워 이기든 지든 결판을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참전한 군사들과 세이토 백성들을 이끌 수 있다.”
바칸은 아모르를 일으켜 세우며 얼굴에 뭍은 피를 닦아 주었다. 바칸의 뜻밖의 결단에 아모르는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대망새가 있는 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이미 패한 전쟁인데 다시 전쟁을 하려는 바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어제까지만 해도 한사코 전쟁을 말리던 바칸이었다. 아모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후퇴를 하자고 말렸다. 그러나 바칸의 의지는 굳세고 단단했다. “군사들에게 아침을 먹이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게 하라! 앞으로의 전쟁은 내가 직접 지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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