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97편의 작품에 사계절 모두 담아
꽃씨 흩날리는 봄·장마로 부르는 여름
풍요의 가을·그리움 살아난 겨울 노래

어머니는 오래 꽃을 바라보셨다
무명앞치마에 자주색 물이 들도록
어머니 가슴처럼 멍이 든 꽃

말 못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어머니 심장을 멈추게 했을까
어머니는 심장이 멈춘 대로
푸른 입술 꽃처럼 다물고

해마다 자주 닭개비는 피는데
어머니는 가슴 멍든 채
주무시고 계시다
- 자주 닭개비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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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시인

그의 시집에는 ‘꽃’이 늘 중심에 있다. 일반적으로 꽃이 상기시키게 하는 아름다움의 의미를 내포할 때도 있지만 어느 사이엔 고통, 고난의 수고로움을 감내한 뒤 마주하는 격려가 되기도 한다.

TBN 대전교통방송 작가로 활동하는 이현옥 시인이 그 자신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은 시집 ‘꽃마실 가는 길에(도서출판 문화의 힘)’를 펴냈다. 모두 4부, 97편의 시가 녹아든 시집에는 사계절이 모두 담겨있다. ‘꽃씨’, ‘봄비’처럼 봄을 노래했고 ‘여름날’, ‘장마’를 빌려 자신이 생각하는 속마음을 넌지시 전하기도 한다. ‘가을일상’, ‘가을다비’처럼 신록이 무르익는 계절을 그리며 풍요를 말할 것 같았지만 채 잊지 못한 그리움, 애달픔은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 때문에 쿵쾅거리는 심장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 중 그에게 겨울은 함께 산다는 것을 일깨우는 계절인 모양이다. ‘당부’처럼 일상의 작은 이야기가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빙점’처럼 결코 인생이 걸어온 길에서 쉬 잊히지 못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추운 그 날에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나이 육십, 어머니가 돼보니 비로소 모정의 세월이 얼마만큼 질곡이, 풍파가 많은지 이해할 수 있겠단다. 그런 심정을 그린 것인지 ‘냉이꽃’에서 그와 덩그러니 핀 꽃만이 어머니를 향해 웃고 있다.

시에 담긴 그의 감정만 주목할 것은 아니다. 그의 시집에는 ‘펜혹’, ‘여름날’처럼 함축미의 절정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단 몇 수의 시이긴 하나 적재적소에 피어난 문학적 표현들은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의도와 자신만의 충분한 생각을 하게 한다. 안현심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들은 한결 같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수놓아져 있다”며 “적절한 긴장감과 함축이 깃들어 있어 문학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난 이 시인은 대전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한남대 사회문화행정복지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수했으며 ‘아이야 우리 별 따러 가자’를 시작으로 ‘친정아버지’, ‘아름다운 동행’ 등의 시집과 ‘내 안에 그대가 있네’, ‘사랑으로 길을 내다’의 산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특히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문단 활동을 인정받아 대덕문학상, 진안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방송작가, 지중해기획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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