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심리학자 칼 융은 사람의 집단 무의식 속에 공통적 심상(心象)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원형이라는 의미에 아키타입(archetype)이라 이름붙였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발전된 변형이 키노타입(kenotype)이다. 내재된 심상에 경험과 상황이 더해져 만들어낸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원형과 변형은 단순히 이미지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의식을 형성하는 틀이 된다.

역사와 전통은 이야기의 원형이 된다. 역사가 오늘과 만날 때 삶이 이해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역사가 내 삶에 개입함으로써 생에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원형이 더욱 발전된 변형이 되어 미래세대의 원형으로 제시된다는 뜻이다.

가짜뉴스 문제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얼마 전에는 총리까지 나서 가짜뉴스 근절과 엄단 방침을 밝혔다. 가짜뉴스란 의도성을 갖고 뉴스를 조작, 왜곡하거나 창작해 배포하는 행위를 뜻한다. 사건이나 정보에 혼란을 줘서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를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하지만 이를 구분하고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관련기관도 명확하지 않고 가짜를 걸러낼 인력이나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것이다.

우선 가짜뉴스를 정의하고 어디까지를 경계로 할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허위, 조작된 정보가 아닌 오보나 잘못된 사건 해석까지 가짜뉴스로 봐야할지는 애매하다. 가짜뉴스는 악의적인 의도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자칫 가짜뉴스를 잘못 정의했다가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억압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가짜뉴스는 사회를 향한 도발이자 폭력이지만 사회나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가짜뉴스는 범죄요건을 구성하는 것이 어렵다.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회나 국가는 법으로 제재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거짓, 허위뉴스는 넘쳐나고 갈수록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짜뉴스의 문제는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사회가 불안할 때는 여지없이 풍문이 돌았고 혼란한 시기에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또 의도적으로 특정뉴스를 부각하거나 특정정보를 노출하는 형태로 여론을 조성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개방적인 정보화시대에 가짜뉴스의 영향력이 과거와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비밀을 지키기 어려운 사회가 되면서 세상은 심각한 권위 상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부정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방송과 언론의 보도에도 의구심을 갖는다. 지도자나 전문가의 말이 영향을 주지 못하니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정치지도자처럼 권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사생활이 노출되고 신비로 덧씌워진 이미지들이 벗겨지면서 신뢰를 잃고 위기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위기라고 느껴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탈출구를 찾기 마련인데 정치지도자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지지자를 모으고 결집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정치인의 막말이 대표적이다. 극단적인 말로 자기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막말을 하면 대중적으로는 비난을 받지만 확실한 지지층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정치생명은 확실한 지지층을 통해 유지되기 때문에 막말이 거침없이 사용되는 것이다. 대중의 거부감에도 정치인들의 막말이 줄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이 어렵고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길 때 믿고 싶은 것에 기대려는 마음이 있다. 이럴 때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면 대중은 쉽게 쏠리게 된다. 이 때문에 가짜뉴스가 근절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거짓뉴스에 속지 않으려면 건강한 의식과 균형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보편과 상식을 기초로 하는 시대윤리가 필요하고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존엄과 가치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역사는 과거 역사의 진보가 만들어 낸 새로운 변형이지만 내일은 다시 원형이 된다. 따라서 오늘 나의 이야기는 미래사회의 비전과 목적을 제공한다. 건강한 의식과 균형있는 시선은 성숙한 변화를 이끌었던 감동적인 나의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다. 이 시대 가짜뉴스에 휘둘리면 안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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