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 공주대학교 교수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개국해 조선이라 이름을 지었으니 고(高 : 堯)와 같은 때라고 했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국의 서자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 보니 널리 인간세상에 도움이 될 만 했다. … (일부 생략) …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고 있었는데, 늘 환웅에게 빌며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환웅이 영험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먹었다. 21일 동안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있는 단군조선 기록의 일부를 직역한 것이다. 상식을 초월하는 내용이 많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 이런 점 때문에 단군기록이 신화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며, 일연 역시 기이한 이야기라고 채록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이편은 일연의 창작이 아니고, 옛날 기록을 참고한 것인 만큼 고조선의 역사기록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도 일연이 본 그 고기를 보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단군신화로 알고 있는 것이 신화적 표현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신화로 치부해 버리게 되면, 자칫 역사적 사실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찌 보면 신화도 사실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엄연히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고 재해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왜 단군조선과 같은 상고시대의 역사기록이 이토록 전무하게 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역사의 기록에 탁월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잦은 외침으로 인해 소실됐을 뿐만 아니라 오래된 사대주의 사관이나 왜적침략기의 식민사관의 해독과 그 잔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근대 이후에는 간신히 남아있는 역사의 잔해마저 실증주의 사관을 앞세워 그 역사적 의미를 외면하고 폄하하는 해석상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 연구에 실증적 사료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역사의 해석에는 상상력 또한 그 못지않게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천절은 국조 단군의 고조선 개국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반만년 우리 역사의 시원이 되는 날인만큼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공휴일이 반가운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삼국유사의 단군기록을 되새겨 보면서 개천절을 맞이해 단군의 자손으로서 최소한의 면책이 됐으면 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나 재세이화(在世理化)와 같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 대신에 곰과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곰과 호랑이에 제공됐던 쑥과 마늘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교육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동굴은 교실이다. 환웅은 교사이고 곰과 호랑이는 학생이다. 사람이 된 곰과 그렇지 못한 호랑이의 사례는 교사나 부모를 신뢰해 사제동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00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21일만 금기했을 뿐인데, 사람으로 변하게 해 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흔히 한국인은 정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다. 반면에 정에 약하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혹시 우리가 정실에 쉽게 흔들리는 것이 그 뿌리가 단군조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100일의 약속을 다 지켰다면 남자가 됐을 텐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가 된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 곰이 암컷이었기 때문인가? 단군시대는 모계사회였는가 아니면 부계사회로 이행된 뒤인가? 등등 꼬리를 무는 궁금증과 이야기 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몇 자 안 되는 기록이지만, 삼국유사 기이편의 단군기록은 상상력의 보물창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귀한 자료인 만큼 소중하게 여기어 두고두고 반추하며 상상력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