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요리의 모든 것을 파헤치다 9편

멜리자네스 파푸차키아(가지신발)

어릴때 텃밭에서 자라던 신선한 야채는 나의 식습관을 결정했다. 나는 야채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파프리카가 요리다. 샐러드가 남다르게 맛있으면 파프리카가 들어있다. 어묵볶음이 기가 막히면 파프리카가 들어있다. 그러나 싫어하는 야채도 있다. 가지였다. 텃밭의 야채 중 단 하나 이해 안 되는 야채가 바로 가지였다. 색깔은 그렇게 예쁜데 미끈하긴 역대급이다. 생으로 빠각하고 먹으면 맛도 그다지 없고 다 먹으면 혓바늘이 선다. 이상한 아채였다.

그 가지를 쪄서 엄마는 매운고추를 썰어 넣고 냉국을 만들어주셨다. 그 맛도 별로였다. 그 이상한 미끄덩거리는 식감은 좀 불편했다. 언젠가는 기름에 달달볶아서 주셨는데 그 또한 아름답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지를 다시보게 됐다. 평균 우리나라 가지보다 두 배 이상은 뚱뚱하고 커다란 가지는 지중해의 내로라하는 요리가 됐다. 가지는 어느 날 구워서 나오고, 어느 날은 음식 속에 자신을 감춘다. 또 어느 날은 고기와 조화가 되는데 이보다 맛있을 수는 없다. 그렇게 가지는 유럽에서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의 요리는 멜리자네스 파퓨차키아였다. 이렇게 긴 이름을 기억할 리 없고 한국에 와서 이름을 알게 됐다. 첫 만남은 옆 사람 먹는 거 보고 저거 달라 말했다.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요리는 아니었지만 그리스 사람들의 주문에는 빠지지 않는 것 같았다. 가지를 세로로 길게 가른 후 속을 파서 고기, 다양한 야채를 다져서 넣고 간은 소금과 후추와 오레가노로 한다. 올리브유는 당연히 들어가 줘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치즈를 듬뿍 뿌려서 오븐에 구워낸다. 두 짝이 같이 나오는 통에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것 같다. 고소하면서도 야채육즙이 넘실거리는 든든한 한 끼다. 두 짝이 나란히 접시에 나오면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것 같은데 그래서 가지신발이다.

마카로나다 탈라시논

우리말로 하면 해산물 파스타라고 보면 된다. 신선한 토마토를 껍질을 벗겨 뭉근하게 끓이다가 허브와 소금 그리고 후추를 넣고 조린다. 그렇게 토마토의 형태가 없어지면 고추와 올리브유를 넣고 끓여준다. 약간의 화이트와인을 넣어주기도 한다. 화이트와인은 향이 뛰어나서 해산물의 비린내를 잡아준다고 한다. 잘 조려준 토마토 페이스트에 신선한 새우와 조개를 넣는다. 거품이 일 때까지 끓여주다가 미리 삶아 놓은 파스타면을 넣는다.

보통 유럽에서는 알단테라 해서 파스타 심이 살강 씹히는 정도로 면을 삶는다. 그러나 아시아 음식영향을 많이 받은 그리스에선 푹 끓여서 살짝 불은 것 같은 면이 나온다. 그러나 양이 너무나 많아서 맛있어 보이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맛은 좋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