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대상 ‘엄마’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부르던 소리 ‘맘마’를 시작으로 아직까지도 수도 없이 부르고 되뇌는 단어 ‘엄마’. 기쁠 때나 슬플 때, 화날 때, 짜증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속상할 때, 무섭고 두려울 때 등 언제나 가장 먼저 찾는 단어 ‘엄마’. 나는 삼형제 중 막내다. 우리집은 넉넉지 못한 살림으로 부모님은 삼형제를 건사시키고자 매일매일 쉴 날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를 마칠 때까지 엄마는 단 하루도 학교에 오질 않았다. 그 때만 해도 비록 시골이지만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대단했다. 소풍, 운동회, 스승의 날 등등 학교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짙은 화장을 한 친구 엄마들이 양손에 크고 작은 선물 등을 연신 날라댔다. 불합리했지만 그런 친구들이 선생님들로부터 귀염을 받고 아이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었다. 팍팍한 살림의 우리집을 원망했고, 학교에 오지 않는 엄마를 원망했다.
어느 날 하굣길에 누군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농로에서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손짓과 함께 내 이름을 불렀다.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함께 있던 나는 순간 창피함에 못 들은 척 무시하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 돌아 온 엄마는 보따리에서 ‘보름달’ 카스테라를 꺼내 내 입에 물려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남의 집 들일을 품앗이하며 얻은 간식을 먹지 않고 나에게 주려 불렀던 것이었다.)
책에도 담겨있고 나또한 지금까지 부르는 톤만 바뀌었을 뿐 아직도 엄마를 부르고 있으며 우리 자녀 또한 여전히 매순간 다른 톤으로 엄마를 찾고 있다. 내게 있어서 엄마는 신을 섬기는 종교 이상의 의미이며 그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시골집을 찾아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싶다.

그리운 우상 ‘아버지’
나는 이 책에서처럼 아버지에게 자전거타기, 물수제비뜨기, 연날리기, 수영하기를 배우진 못했다. 나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포격으로 인해 왼손의 손가락이 모두 없는 장애를 안고 다섯 식구를 무탈하게 건사시켰다. 13년 전 허망하게 곁을 떠나신 아버지... 전방의 군생활에 힘겨워할 때 인생선배로서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셨고 나는 취침 소등 후 몰래 편지봉투를 뜯으며 밤새 베갯잇을 적셨다. 아직도 그 편지는 내게 아버지의 넓은 등처럼 의지가 된다. 이제 나의 딸과 아들에게 나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무한 믿음을 실천해야겠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족의 역사, 그 중심의 ‘엄마’, ‘아버지’
사실 누구에게나 한 시대를 살며 당시의 문화와 시대상을 비춰보게 되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식들이, 후손들이 이러한 보편적인 사실들을 쉽게 넘기지 않고 소중하게 추억하고 간직한다면 작은 조각들이 커다란 그림퍼즐을 이루듯이 모든 역사와 그 맥을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곧 나와 관련된 작은 삶들의 집합체인 하나의 큰 공동체의 역사, 국가의 역사이며 그 중심엔 ‘엄마’, ‘아버지’의 삶이 있다. ‘엄마’, ‘아버지’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불러도 가슴이 먹먹하고 짠하다. 이 책들을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시간을 다시 한 번 추억하고 홀로 고향을 지키시는 어머니를 그리워 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아내를 그리워 할 딸, 아들을 위해 두 손을 모아 본다. 윤병훈(청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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