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현 내포취재본부 차장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15년 전 방영된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서 남자주인공이 부메랑을 던지며, 기억을 잃은 연인에게 목 놓아 외친 한마디다.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에 대중은 열광했고 대사가 히트를 친 덕에 부메랑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뚱딴지처럼 옛 드라마의 부메랑을 끄집어낸 건 충남지역 정가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충남도의회의 시·군 행정사무감사 때문이다. 도의회는 5대(1995년)부터 9대(2013년)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감사를 실시하다 10대(2014년) 들어 현장감사를 중단하고 자료요구를 통한 감사를 벌였다.

이렇게 ‘종이호랑이’가 된 시·군 행정사무감사는 지난해 도의회가 기초단체 위임사무를 감사할 수 있는 권한을 명확히 한 관련조례안 개정으로 부활을 알렸고, 올해 새로 구성된 11대 의회는 9월 임시회에서 ‘2018 행정사무감사 계획 승인의건’을 의결했다.

때마침 정부도 위임·위탁사무를 처리하는 자치단체가 상급 자치단체 의회의 행정사무감사 대상으로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법시행령 개정에 나섰다. 상위법인 지방자치법과 불일치하는 시행령 조문을 바로잡아 법적정합성(무모순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여기까진 좋았다. 충남시군의회의장협의회, 충남공무원노동조합연맹, 전국공무원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는 ‘시·군 행정사무감사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조직적인 대응을 시작했고 도내 각 시·군의회들은 앞다퉈 행정사무감사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11월 12~16일 감사가 예정된 부여, 천안, 보령, 서산 등 4개 시·군은 도의회의 감사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감사장 설치도 막겠다며 초유의 실력 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지방자치법시행령 개정도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24일 금강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지방자치법시행령 일부개정령안 입법예고기간(9월1일~10월1일) 충남지역 등 전국 기초단체 20곳과 전국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 등에서 반대의견을 제출해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유보했다”며 “(개정 여부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기양양하게 칼을 빼든 도의회는 난감해졌다. 잔뜩 벼린 칼을 다시 칼집에 넣기도 휘두르기도 애매하다.

유병국 도의회 의장은 지난 16일 11대 의회 개원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시·군 감사는 지방자치법과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에 따른 것으로 도의회의 당연한 업무다. 올해 시·군 행정사무감사를 하는 것으로 본회의장에서 의결한 만큼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피감기관이 감사를 ‘보이콧’한다 해도 과태료(최고 500만 원) 부과 외에는 달리 강제하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다.

강대강 대립구도에서 감사는 불발되고, 서로 감정만 상한 채 반목하는 ‘해프닝’ 정도로 끝날 것이란 회의적 전망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123개 시·군 위임사무 및 연간 6000억 원의 도비보조금 등으로 한정해 1년 3~4개 시·군을 대상으로 도의회 해당 상임위원회 소관업무만 집중 검증하겠다는 도의회의 명분과 기초단체 길들이기, 중복감사의 피로감, 기초의회 기능 무시, 지방자치·분권 흐름 역행 등을 내세우는 반대 측 주장은 난마처럼 뒤엉켜 버렸다.

210만 도민들은 자신의 공복(公僕)인 선출직 광역·기초의원과 시장·군수, 그리고 공무원 모두의 진의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부메랑은 나와 부족의 생존을 위한 사냥용, 되돌아오지 않는 전투용 살상무기로 나뉘었다고 한다. 도의회가 던진 행정사무감사 부메랑의 진짜 용도는 시간이 밝혀낼 것이고, 그에 따른 문책과 질타의 후폭풍을 견뎌낼 준비도 양 진영이 하고 있는지 도민들은 묻고 있다.

문승현 기자 bear@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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