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지리학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사람이 살아 갈 터를 정할 때에는 지리(地理)와 산수(山水)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지리란 물의 흐름과 들의 모습, 산의 모양과 물의 열림과 닫힘 등 풍수지리가 으뜸이며 산과 물은 수려한 돌로 산봉우리를 이뤄야 한다. 또 반드시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해야 큰 힘을 발휘하게 되고 도읍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개성의 오관산(송악산)과 한양의 삼각산(북한산), 진잠의 계룡산과 문화의 구월산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신라 말 도선대사의 풍수지리적 이론이 정립된 후 역대 도읍지로 지정된 3곳이 있는데 고려의 왕건에 의한 도읍인 오관산과 조선 초 이성계에 의한 계룡산과 삼각산 도읍의 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려의 개성은 으뜸산인 오관산에서 주산(主山)인 송악산에 이르기 까지 산세가 수려하고 사방의 산이 명당을 애워싸서 정기를 축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장풍국(藏風局·바람을 막아주는 형국)이다. 물의 기운인 수세(水勢)적 측면에서는 사방이 강이나 하천, 바다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중심인 만월대는 개성의 중심이 아니라 북서쪽인 건(乾)방으로 24방위 중 가장 높은 자리로 왕의 권위를 위해 그 곳에 왕궁을 건설했다. 그런 연유로 한쪽으로 치우쳐 변방의 느낌을 주고 물 또한 완전한 득수(得水)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산과 물이 균형이 잘 잡힌 완전한 태극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도읍이 형성됨을 알 수 있고 경제적 측면인 물(水)의 이용에 어려움이 따른 형국으로 왕권강화와 방어형으로 소극적인 기운이 되어 크게 번창하는 대국(大國)의 지세가 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도읍을 준비했던 신도안의 주산인 계룡산의 유래는 봉우리를 이은 능선의 모양이 닭의 벼슬처럼 생기고 그 봉우리들이 이어져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용처럼 생겼다고 유래됐다. 또 민간신앙에서 닭과 용에 대하여 닭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알리며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다.

어둠속에서 환히 밝아오는 광명을 상징한다. 용(龍)은 지구의 기운을 뜻하는 12종류 중 하나로서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로 조화와 변화를 통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아가 물과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웅장한 기상을 뜻한다.

이렇듯 계룡산은 무궁무진함을 의미하며 역사적으로도 신라 때부터 국가의 봉제처(奉祭處)로 삼았고 고려, 조선조까지 계승됐다. 그리고 오늘에도 천제(天祭)를 모시고 있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명산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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