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원 충남경찰청 기획예산계 경감

일요일 낮부터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붉게 물들었던 가로수 잎이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강원도 산간에는 함박눈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렸다. 벌써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것처럼 오고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많이 두터워졌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봄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찬바람이 불면 이렇게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는 아쉬움과 함께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걱정이 앞선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눈으로 보지 않으면 답답하고 막상 찾아뵈면 안쓰러운 마음만 커진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설득해도 아직은 자식에게 얹혀 살 나이가 아니라고 펄쩍 뛴다.

아는 이도 없고 길도 모르는 아파트에서 답답하게 살기보다는 시골생활이 좋다는 말씀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다르고 올해 또 다르다는 말처럼 이제 곧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늘 카랑카랑하고 자신감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귀까지 어두워졌다.

그래도 갈 때마다 뭘 그렇게 바리바리 챙겨주려고 하시는지 세월이 흘러도 자식들 챙기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일이 있어 주말에 가지 못하면 막내딸부터 시작해서 큰아들과 아내에게까지 어머니 안부 전화가 릴레이로 이어진다. 자식과 손주들 얼굴을 보지 못하면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서 그럴 것이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과 중학생인 둘째 아들까지 학원이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핑계로 시골집 가는 길에 따라나서지 않으려하니 자식이지만 서운한 생각마저 든다.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세 아이가 어렸을 때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 자식도 자식이지만 손주들이 더 애틋할 것이다. 어쩌면 자식과 손주들 얼굴 보고 목소리 듣는 것을 고독한 노년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는 진통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골집에는 기름과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목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

말만 겸용이지 어머니는 보일러에 기름이 차 있어도 웬만해선 쓰지 않는다. 기름을 땐다고 해서 막상 가서 보면 게이지 수치가 항상 그대로다. 어디선가 얻어왔다는 나무만 땔감으로 썼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이 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화목보일러 화재소식만 나와도 불안해진다.

걱정하지 말라고 늘 말씀해도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이지만 유독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다가오면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니 생각이 부쩍 늘어만 간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