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대왕님! 이제 살길은 산위로 달아나는 것뿐이오. 들어오는 입구가 불이 붙어 막혔으니 불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토안이 그리 말하고 산위를 향하여 올라가자 올돌골이 토안의 뒤를 따라 가는데 갑자기 촉병이 나타나 함성을 지르며 화살을 퍼 부었다. ?
“아이고! 산위에도 적이 있었구나! 애니 장군! 어디로 가야 살 수 있겠나?”
올돌골이 토안을 놓쳐버리고 애니를 부르며 다시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 마침 몇 개 남은 폭약 수레가 터지면서 올돌골의 간담을 찢어 놓을 것 같이 크게 울렸다. 폭약 터지는 소리가 그치고 올돌골이 사위를 살펴보니 이제는 토안도 애니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느냐? 죽었느냐? 살았다면 말 좀 해 보라!’
2장이 넘은 큰 키의 올돌골이 코끼리를 타고 단독으로 달아나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운수 사납게 마지막 폭약이 터지면서 그 폭약의 불똥이 코끼리 머리의 장식품에 날아와 불이 붙었다. 장식품에 붙은 불은 점점 커져서 코끼리가 머리에 불을 뒤집어쓰는 형국이 되었다. 이에 코끼리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제멋대로 노대는 바람에 올돌골은 구렁텅이에 곤두박질해서 쳐 박히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머리에 불을 뒤집어 쓴 코끼리는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불타는 밀림 속으로 뛰어 들고 말았다. ?
“어이쿠!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올돌골은 구렁텅이에서 간신히 기어 나와 달아나버린 코끼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크게 탄식하고는 활로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이런 올돌골을 발견한 촉병이 집중적으로 화살 세례를 퍼부었다. 이제 산중에는 촉병의 화살이 난무하고 화마는 기름칠이 된 등갑을 입은 등갑군을 제물로 삼게 되었다.
“뜨거워 못 살겠소. 사람 잔 살려주시오.”
밀림의 음산한 냉기가 화마에 쫓겨 사라지고 단말마와도 같은 등갑군들의 절규가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하고 공포를 크게 자아내게 했다. 이 싸움에서 불패의 등갑군 3만 명이 순식간에 모두 불에 타 죽었다. 온갖 맹수도 타 죽었다. 살아있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반사곡에 한줌의 재로 남게 되었다.
이때 공명은 산 위에서 불타는 반사곡을 굽어보고 있었다. 불에 타 죽어간 등갑군의 간장을 찢는 절규를 들으며 공명은 울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던 공명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가 비록 병가로 공훈을 이루었다 하나 반드시 내 수명이 감해지리라.”
곁의 장수들이 숙연해지며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자 자룡이 앞으로 나서며 공명을 위로하기를
“승상! 천하는 생생유전(生生流轉)하는 법이 아닙니까. 낳고 죽고 그리고 죽고 낳고 반복하는 것은 천지개벽 이래 대 생명의 본연한 자세입니다. 황하의 큰물이 한번 넘치면 수만 명의 인명이 살생되지만 그 물줄기가 원상으로 회복되면 곡식은 더욱 무성하고 인명은 더욱 번창해 갑니다. 승상의 대업은 왕화의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만병 3만이 죽어도 만토천재(蠻土千載)의 덕화를 남길 것인데 이 3만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승상과 같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까?”
“오호라, 자룡이 나에게 참으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었소. 내가 자룡의 말을 들으니 다소나마 위로가 되오.”
공명은 눈물을 흘리며 자룡의 말에 대답했다. 그는 진실로 인간애에 충실한 사람으로 불쌍한 영혼을 향하여 눈물도 흘릴 줄 안 영웅이었다. 그리고 대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였으며 후주의 황명에 충실한 신하였다. 인간 공명의 칠종칠금의 대업적은 영원불멸의 신화로 남고 또 남으리라. 이와 같이 범인으로써는 감히 흉내도 못 낼 불가사의한 업적을 이루자 훗날 시인이 있어 공명을 기리어 시를 쓰니

‘푸른 기가 옹위한 윤건과 백우선이여.
칠종칠금으로 만왕을 제어했다.
지금도 계동에는 그 위덕이 전해져서
높은 언덕 위에 사당을 모셨구나!’
필자는 여기서 크게 깨달음이 있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전쟁사는 그냥 전쟁사만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었다. 어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경서(經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칠종칠금을 만들어 낸 영웅 제갈공명의 눈물과 조자룡의 생생유전 한다는 자연 질서의 엄연한 섭리를 웅변으로 들려준 것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 어중중한 명상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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