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중간고사를 마친 첫 시간, 아이들의 원성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김영하 작가의 ‘시간 도둑’을 읽었다.

첫 번째 시간은 내가 직접 소리내어 읽으며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이야기도 덧붙이며 함께 읽었다. “선생님, 너무 편파적인 거 아니에요? 스마트폰이 좋은 점도 많잖아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불편하고 극단적인 얘기를 해야 사람들이 조금 움찔하거든.”

두 번째 시간, “이렇게 좋은 글에 너희가 '아무말 대잔치'로 독후감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아. 미안하지만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옮겨 적으며 이에 맞게 생각을 하고 글을 써주길 바란다.”

이 책은 김영하 작가가 몇 년 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한 점을 쓴 글이다. 특히, 현대인들의 스마트폰 사용과 관련해 시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안목을 보여주고 있다.

왜 제목을 ‘시간 도둑’이라고 했을까?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란 말일까? 작가는 스마트폰이 가해자이고 우리가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채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작가는 볼 것이 없어서 시간이 남아 돌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볼 것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항상 부족하고, 늘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책에서 소개한 소설인 ‘생존 시간 카드’의 내용처럼 빈자가 부자에게 시간을 파는 일이 실제 일어나지는 않지만 현대인들은 지금 자신의 시간을 스마트폰 개발자(부자)에게 돈을 내주면서까지 빼앗기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지 못하며 살고 있다.

소설 ‘생존 시간 카드’에서 그린 가상의 세상이 실제 현실로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나의 시간을 부자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 글대로라면 앞으로 부자와 빈자 사이에는 시간을 두고 불공정한 거래가 계속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 거래에 내가 갑이 될 수도 있고 을이 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24시간을 손에 쥐고 왜 누구는 갑이 되고 누구는 을이 돼야 한단 말인가?

작가의 마지막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이런 세계에서 어떻게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지킬 것인가.” 나는 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놓아야 한다.

인간의 시간은 공평하게 유한하다. 모두 끝(죽음)을 향해 가는 길 위에 놓여 있다. 그 길이 꽃길이 되느냐 아니냐는 나의 시간 사용 태도에 달려 있다.

아이들의 글이 내 마음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잘 읽어 두면 스마트폰에 몇 시간을 쓰면서도 마음은 불편해질 테니까 말이다. 알고라도 있으면 변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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