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북방민족과의 전쟁 ⑧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싸우리라.)

“이얍!” 바칸은 옹골찬 각오를 하고 산드러지게 몸을 날렸다. 바칸의 몸이 하늘을 유영하듯 부드럽게 솟구쳤다. 대망새가 지금까지 숫한 결투를 하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유연한 몸놀림이었다. 날아오른 몸이 대망새를 향해 쏟아져 내릴 때는 가늘고 날렵한 바늘처럼 보였다. 바칸의 몸놀림은 과거 비죽이나 골개 등과는 차원이 달랐다. 천세의 영웅 고다리처럼 힘을 바탕으로 하지도 않았다. 바칸의 몸놀림은 단순한 싸움꾼의 그것이 아니라 예술과도 같은 무술이라고 해야 했다. 바칸은 무술의 최고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북방인들이 저 정도였단 말인가.)

바칸이 지축을 박차고 날아올라 바늘처럼 날렵하게 쏟아져 내렸지만 대망새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바칸은 순간 무서운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 저럴 수가! 저 자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어쩌려는 것일까.)

초전에 박살내버릴 것 같은 기세로 쏟아져 내리던 바칸의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다. 대망새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긴 창을 들어 호연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 때 만약 대망새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바칸은 대망새의 빈틈을 찾아 단번에 상황을 종료시켰을 것이다. 순식간에 날아올라 적을 공격하는 바칸의 기술은 그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빠각~”

바칸의 도끼와 대망새의 창끝이 마주쳐 쟁연한 불꽃을 피웠다. 바칸의 첫 번째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땅으로 살포시 내려앉은 바칸은 도끼를 버리고 창을 들었다. “슈슉~”

바칸은 대망새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두 바퀴 공중회전을 한 다음 창끝을 세워 대망새의 목을 향해 찔렀다. 그러나 대망새는 가볍게 피하며 손바닥으로 창의 허리를 분질렀다. 바칸의 두 번째 공격도 허사로 돌아갔다. 무기로의 공격이 먹히지 않자 바칸은 맨주먹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날아올라 적을 공격하는 기술은 단번에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지만 상대가 동요하지 않으면 오히려 공격하는 사람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몸이 허공에 떠서 부자연스러운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무기 역시 상대가 제압할 수 있다면 거추장스러운 장난감에 불과하다. 바칸이 무기를 버리고 맨주먹으로 대망새를 공격하는 것은 최후의 공격수단이었던 것이다.

바칸의 공격이 서너 번 이어졌다. 한 번씩 공격할 때마다 예리한 바람소리가 났다. 마지막 공격을 할 때는 몸을 공처럼 데굴데굴 굴려 대망새의 두 다리를 거머쥐려고 했다. 대망새가 몸을 솟구쳐 마지막 공격을 피하자 바칸의 공격이 멈추었다. 바칸은 자신의 공격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대망새의 공격을 방어함으로써 빈틈을 찾아보려했다.

(아모르의 말이 맞았다. 저 자의 몸놀림은 물처럼 유연하며 연기처럼 흘러 쉽사리 잡을 수 없다. 천하에 저런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이제 마지막 수를 써야겠다.)

아모르는 마지막 수를 생각하며 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저 자가 나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군.)

대망새는 바칸의 수를 환하게 읽고 있었다. 드디어 대망새가 꼼짝도 하지 않는 바칸을 향해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대망새의 몸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그러나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심령처럼 따라오는 긴 꼬리의 그림자를 달고 다녔다. 바칸은 도무지 대망새의 본 모습을 눈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대망새는 바칸을 가운데 두고 동서남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바칸의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그, 그만, 내, 내가졌소!”

바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끝까지 오기를 부리며 달려들었을 텐데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대망새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바칸은 과연 대륙최고의 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

바칸의 항복은 사실상 복속을 의미했다. 대망새는 그러나 노고록의 북쪽 위대한 산 주변에 세운 국가수준의 공동체 세이토를 자신의 발아래 꿇리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상 복속은 노고록의 대통합을 의미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세이토와의 전쟁은 노고록의 통일전쟁이었으며 그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대망새가 노고록의 통치자가 된 셈이다. “팬주룽의 위대한 바가나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항복을 한 바칸은 약속대로 대망새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망새의 머릿속에는 팬주룽 그리고 노고록의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

(팬주룽과 노고록을 위해서는 세이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이토와 상생을 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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