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84세…동부경로당 노인들
기적같은 태극기체조 스토리

붉은 베레모에 흰 티를 입은 어르신들이 가수 정수라의 ‘아!대한민국’에 맞춰 절도있게 태극기를 휘두르고 있다. 단순히 태극기를 흔드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흥겨운 몸짓은 일사분란했다. 장장 8개월에 걸쳐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일명 ‘태극기 체조’ 다. 이어진 가수 태진아의 ‘사랑타령’ 반주에 맞춰 더욱 신명나는 체조를 선보이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상기돼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조금 힘겨운 듯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체조는 그렇게 계속됐다. ▶관련기사 3면
시연이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졌고 어르신들의 얼굴에 비친 미소는 볼에 붙인 별모양 스티커처럼 반짝였다.

지난달 30일 충남대 정심화문화회관 백마홀에서 열린 제6회 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에서 1등(으뜸상)의 영예를 차지한 대전 동구지회 동부경로당 소속 어르신들의 공연 장면이다. 동부경로당팀은 남성 회원들로만 구성돼 젊음 부럽지 않은 남성미를 발산했다.

대한노인회 대전연합회(회장 이철연) 경로당광역지원센터가 주관하고 대전대LINK+ 사업단이 후원한 행사는 경로당 어르신들의 건전한 여가활동을 장려하고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3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어르신들의 놀이마당이다.

이번 대회에는 관내 경로당 어르신으로 구성된 10개 팀 200여 명이 출전했다. 어르신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노인요가, 건강댄스, 맷돌체조 등의 실력을 발산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무료한 경로당에 활기를 가져다 준 태극기체조에 대해 처음부터 모든 어르신들이 열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최고 연장자 나이가 94세인 동부경로당에서 체조를 선보인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도전이지만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건강에 좋다”는 설명에도 어르신들이 반신반의한 것은 그들의 신체 나이로 미뤄 볼 때 당연한 반응이었을 터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체조 연습이 활성화되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신섭(74) 회장과 김순일(62) 건강체조강사의 숨은 노력이 동기와 용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교통사고로 장애 5급을 받은 채낙철(85) 어르신은 경로당 내에서도 가장 거동이 어려워 앉아 있기 일쑤였다. 앉아서 율동을 맞추는데 3개월이 걸렸다. 배우는 사람에게도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녹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김 강사의 끈기 있는 노력에 채 어르신도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앉아 있던 채 어르신이 체조를 배운지 8개월 만에 일어서서 동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건강체조 프로그램이 영화같은 효험을 발휘한 순간이다. 체조를 통해 치료와 활력을 얻은 어르신들은 내친김에 발표대회 출전을 결심했고 1등이라는 성취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동부경로당팀을 으뜸상으로 이끈 이 회장에게는 대회 상금 30만 원이 마치 3000만 원처럼 느껴진다. 이 회장은 “건강체조를 통해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은 열정을 보여줘 많은 노인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번 발표대회는 황혼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 됐다”고 감격적인 소감을 전했다.

신성룡 기자 dragon@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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