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환 건양대 교수(법학박사)

지난 9일 새벽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불이 고시원 건물 3층 출입구 부근에서 발생한 탓에 사상자들은 제대로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던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름은 ‘고시원’이었지만 거주자 대부분은 40∼70대 일용직 근로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화재 사건은 아직도 후진적인 우리의 주거문화와 안전 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시원 화재는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고질적인 사고다. 좁은 복도와 미로 같은 방 구조로 인해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크다. 고시원 화재가 더 가슴 아픈 이유는 여기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생활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이나 저소득층, 타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이다.

우리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의 국민, 이 중에서도 특히 청년들이 고시원이나 쪽방촌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거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수적인 생활공간이며 사회적으로도 생산과 소비를 늘려나가야 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안정적인 주거생활은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10세대 중 1세대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고 있다. 세대원 수에 비해 좁은 면적에 살거나 방의 개수가 부족하고 부엌, 화장실, 목욕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2015년 5월 국회에서 주거기본법이 통과됐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추세와 헌법정신에 비춰볼 때 주거복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주거문제는 단순한 주거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최소한의 기본권이며 청년의 취업, 결혼, 출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열악한 주거복지실태는 청년이 돼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청년들이 늘어나 추세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청년층의 주거 빈곤 문제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높은 실업률과 불안정한 노동시장적 지위로 인해 중요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청년실업의 증가, 학자금융자 변제, 주택 부족과 비싼 임대료 등으로 인해 청년들이 열악한 쪽방이나 고시촌으로 내몰리는 비극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다. 청년들이 부모 집에 오래 거주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늦은 결혼과 저출산으로 이어져 결국은 국가적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청년이나 신혼부부의 열악한 주거복지실태가 우리사회의 문제점으로 부각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맞춤형 해법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국의 경우, 2015년 도입된 ‘주택구입 자산형성 지원 제도’를 확대·개편해 2017년 2월 ‘생애주기 자산형성 지원 제도’를 도입하면서 16세 이상 청년이 생애 최초 주택 구입을 위해 저축을 하면 정부가 매칭으로 저축금의 25%를 보너스로 지급하는 청년의 신규 주택 구입 장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러한 주택 구입 지원 방식은 우리나라도 도입을 고려해볼 만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청년층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지만 구호적 측면에 불과하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제시하고 못 하고 있다. 청년은 최근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높은 전월세 부담으로 이중고를 겪는 새로운 주거 취약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청년에 표적화된 복지정책과 노동시장 정책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청년층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복지정책이 설계돼야 한다. 고시원 화재사건은 우리사회가 주거복지를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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