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현 내포취재본부 차장

공무원의 표상(表象)이라 할 만한 사람을 하나 안다. 참람한 8개월 전 기억을 떠올린다.
올 3월 6일 오전 9시 30분. 그는 전국 언론사의 카메라 플래시를 한 몸에 받아야 했다. “도민께 사과드린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이날 중으로 사퇴한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앞다퉈 터져 나오는 기자들의 질문세례에 “도정은 조직과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 왔기 때문에 행정부지사 권한대행체제에서도 차질 없이 운영될 것으로 믿는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30년 ‘직업공무원’ 남궁영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그렇게 도지사 궐위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서도 휘하 공직사회에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며 민선 6기 마지막 연착륙을 이끌었다.
지역에서 행정을 담당하며 여러 기관을 다녀봤다. 공무원이라는 습성상 쉽사리 내보이지 않지만 정치적 야망이 있거나 불만 가득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특유의 권위의식은 여전하다.
총천연색에 가까운 이들 군상을 관통하는 건 법 또는 조례다. 명문화된 조항을 신봉하며 그 외의 것은 배척한다. 규정에도 없는 괜한 모험하려 들면 내 목이 날아가는 공직사회의 엄격한 룰이다.
민간영역에선 답답해 하지만 공무원은 본디 그런 사람들이다. 또 그러라고 있는 집단이다. 한마디로 공무원은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보루다.
국가 및 지방 공무원법을 따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신분보장 원칙을 명문화한 건 어쩌면 모든 공무원은 법규를 준수하며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성실의무)거나 노동운동 등 공무외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집단행위금지)는 것과 같이 공무원에 수없이 지워진 ‘의무’에 대한 일종의 보상일 것이다.
그런데 충남도내 공무원의 행보가 요즘 요란스럽다. 행정사무감사(행감)를 하겠다며 시·군을 방문한 도의원들을 가로막고 실력 저지에 나선 것이다.
시·군 소속 공무원들은 행감이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고, 행감 대상기관을 정한 지방자치법시행령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행정사무 감사권 및 조사권을 다룬 지방자치법 41조 3항에는 ‘지방자치단체 및 그 장이 위임받아 처리하는 국가사무와 시·도 사무에 대해 국회와 시·도의회가 직접 감사하기로 한 사무 외에는 그 감사를 각각 해당 시·도의회와 시·군 및 자치구의회가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광역의회의 기초단체 감사권한을 명확히 한 것이다.
직업공무원이 법적용 제1원칙인 ‘상위법 우선의 원칙’을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행감 보이콧은 법적 안정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보름 전 행감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에서 만난 공동대책위원회 측 한 인사의 말은 그 단면을 드러낸다. “도민 입장에선 나랏밥 먹는 공무원들이 지방행정 법규범(조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우리 행동이) 법적인 측면에선 명분이 잘 서지 않는다. 정말 부담스럽고 곤란한 상황이다. 도의회도 그래서 자신감을 가진 것 같다.”
일선 공무원들이 대놓고 도의회와 대립하는 사이 일보 내지 이보쯤 물러서 있는 이들도 있다. 시·군의원과 시장·군수 얘기다.
도의회 행감이 실제 진행된다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경우 없으므로 기초의회는 대체 무얼 한 것이냐는 무용론이 고개를 들 것이고 단체장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텐데 말이다.
1년 전 행감 논란의 출발선부터 대오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이 두 진영은 얼굴 팔린 선출직 공직자로서 도의회와 세(勢) 대결, 밥그릇 싸움이라는 딱지만큼은 피하고 싶어 한다.
행감 갈등은 겉으로는 당사자가 모두 파국을 맞는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도의회는 할 만큼 했다는 명분 쌓기에 공들이고 있고, 반대편에 선 진영은 앞으로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출구 찾기에 나설 것이다. 결국 각자의 이득과 손실의 합이 ‘0’이 되는 소모적인 제로섬 게임의 폐해는 애꿎은 도민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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