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촉나라가 제갈양이 죽은 후 강유와 같은 충신이 우국의 열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살아 있었으나 그 행위 자체가 중원공략에만 힘을 쏟다보니 백성은 곤궁에 빠지고 조정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특히 무골호인인 후주 유선의 황음으로 내시 황호가 발호하여 정사를 망쳤다는 사실은 다 아는 역사이다.

그런 어지러운 성도정권은 진나라 사마염이 보낸 등애의 말발굽이 성도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후주 유선은 항복 문서를 만들게 했다. 이에 유비 현덕의 자손들과 여러 유신들의 자손들은 제마다 제 생긴 대로 살길을 찾아 떠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망국한을 품은 망국의 후손들은 쑥대밭이 된 황량한 벌판을 부평초처럼 떠돌게 되었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과거의 부귀와 영화는 한낱 꿈이라 해서 잘못이 아닐 것이다.

현덕이 삼고초려의 어려움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제갈공명을 얻었다. 그래서 유약한 군사를 가지고서도 공명의 전술전략과 권모술수로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천신만고 끝에 현덕이 촉나라를 세우게 했다.

그러나 현덕의 아들 후주 유선이 무능하였기에 환관과 무당이 발호하여 국정이 어지러워졌다. 이와 같이 국기가 문란하고 한번 기울어져 간 나라는 강유와 같은 능신이 있었으나 위나라 등애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그때 후주 유선은 정사에는 밝지 못했으나 아들 낳는 재주가 있어 7 아들을 두었다. 장자 유선, 요, 종, 찬, 심, 순 그리고 7자로 거가 있었다. 제 7자 거는 나중에 연이라고 이름을 바꾸니 이제부터 거를 연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왜냐하면 그가 멸망한 촉국을 이어받아 한나라를 부흥시킬 재목이기 때문이다. 후주의 아들 중 5자인 북지왕 유심과 7자인 유연은 유능하고 똑똑했으나 나머지 다섯은 모두 부왕 유선을 닮아 무골호인이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자 5자 유심은 주전론을 펴며 싸우다 죽기를 결심했다. 싸우지 않고 항복하는 것을 꿋꿋이 반대했다. 그러나 무능한 황제 유선은 항복문서를 쓰고 위장 등애에게 무릎을 꿇었다.

유심은 아버지 후주의 뼈 없는 무능 때문에 자신의 뜻이 좌절되자 불같이 화를 내며 황궁에서 물러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낯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남편 유심을 바라본 아내 최씨가 놀라 조심스럽게 다가가 여쭙기를

“나으리, 어떤 사태를 만났기에 그리도 화를 내십니까? 존귀한 몸을 상할까 크게 두렵습니다.”

“이보오, 부인. 내 몸 상하는 것이 대수요. 간악한 위적이 코앞에 닥쳐왔는데 싸울 생각은 아니하고 항복문서부터 만드는 황제가 아버님 말고 또 어디에 있겠소.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소.”

“나으리,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리도 위급하단 말씀이오니까?”

“그렇소. 아버님은 상말로 나라를 팔았소. 허나 나는 이를 받아드릴 수 없소. 조부이신 선제께서 어떻게 세우신 나라라고 그리 쉽게 팔아먹는 단 말이오. 나는 하늘에 계신 할아버님을 따라갈지언정 저 간악무도한 위적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하겠소.”

“참말로 장하십니다. 나으리, 신첩을 먼저 목을 베시고 뜻대로 하십시오.”

북지왕 유심은 아내 최씨가 뜻밖에도 충절이 넘치는 말로 용기를 주자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묻기를

“여보시오, 아녀자의 몸으로 어찌 죽음을 그리 쉽게 택하신단 말씀이오?”

“나으리, 첩이 죽는데 달리 무슨 이유가 또 있겠습니까? 나으리는 선제께서 남기신 사직과 부황을 위해서 죽고 첩은 지아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면 그 뜻이 매 한가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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