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김기옥 사유담 협동조합 이사

마음이 사람 몸 어디에 붙은지 몰라도 그 마음에 의지가 들어가면 사람은 무섭게 돌변합니다. 꽃같이 고운 아이는 서울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전쟁중이던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프랑스 1호 유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스승이었던 이병도 박사는 떠나는 제자에게 특명을 내립니다. 그렇게 떠난 아이는 스승의 한마디를 인생과 바꿉니다.

영특한 아이는 동양 대부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국립도서관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합니다. 그러면서도 파리 제7대학에서 역사학박사가 됩니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아이의 삶은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을 겁니다. 모든 최초를 다 달고 교수로 승승장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는 스승님의 특명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 땅 어딘가에 외규장각 도서와 직지가 있을것이다. 찾아라. 그리고 돌려놓아라.”

아이는 평생을 걸쳐 이 책을 찾아 떠돕니다. 그러다가 1972년 금속활자 인쇄물 ‘직지’를 찾게 됩니다. 그렇게 고려의 직지는 아이를 통해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돼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3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의 영예를 얻습니다. 대단한 결과였습니다. 프랑스는 스파이처럼 자신의 치부를 찌르는 아이가 미웠습니다. 그러다 1975년 꿈에도 그리던 외규장각도서를 베르사이유 궁전 분관 폐지창고에서 거의 버려지기 직전 상태에서 찾게 됩니다. 그렇게 찾아진 외규장각도서는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훔쳐간 책이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아이에게 해고를 통보합니다. 한국정부도 한참 유럽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라 박병선 여사의 행동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전쟁 중 약탈당한 국가 문서를 반환하라고 요구하지만 프랑스는 싸늘했습니다. 국제법에 따라 말끔히 한국으로 돌려줄거라 생각했지만 국제관계는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결심했습니다. ‘프랑스가 안 돌려주면, 대한민국이 적극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돌려놓겠다.’

과연 무슨 힘으로 돌려놓겠다는 걸까요. 더 이상 직원도, 연구원도 아닌 아이는 개인 자격으로 도서관에 찾아가 열람을 요청합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어떤 열람도 받아들이게 돼있는 도서관법을 들이밀며 권한을 주장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도서관은 책을 내주었고 아이는 가져갈 수 없다면 필사해서 내용이라도 조국에 전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혹시 책을 치울까봐 하루도 쉴 수 없는 나날이 13년 이상 이어집니다. 아이는 이제 흰머리가 가득합니다. 도서관에서 어람용 의괘인 파란, 초록 비단으로 덮힌 책을 매일 베껴쓰느라 ‘파란 책만 보는 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 어느날 배가 아파 병원을 가니 직장암 4기랍니다. 당장 수술을 했지만 의료보험도 없는 떠돌이는 수천 만 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적처럼 직지의 고향인 청주에서 아이를 위한 모금을 시작합니다. 직지가 청주 흥덕사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청주를 구했고, 청주는 아이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노력은 곧 현실이 됩니다.

2011년 5월 27일, 두 대의 비행기에 실려 외규장각도서가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나는 그 감동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아이는 분명 두 눈 퉁퉁 붓도록 종일 울었을겁니다. 이제 할 일 다 마쳤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아이는 같은해 11월 22일, 조용히 천국으로 돌아갑니다. 맑은 날이었습니다. 맑은 눈의 아이는 88세였습니다. 머리엔 흰 눈 가득 내렸어도 그 눈은 별처럼 반짝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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