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석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대전시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도시브랜드 슬로건으로 이츠 대전(It’s Daejeon)이나 과학기술도시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It’s Daejeon에서 ‘I’가 흥미로운(Interesting) 도시를, ‘T’가 전통·문화(Tradition & Culture) 도시를, ‘S’가 과학기술(Science & Technology) 도시를 뜻함을 아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브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교육의 관점에서 여러 유형의 자본(Capital) 형성 과정을 통해 부모세대에서 자녀세대로 부(富)가 어떻게 대물림 되고 사회적 계급이 어떻게 다시 자녀세대로 재생산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는데 그는 경제자본과 문화자본, 신뢰자본의 개념으로 그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풀어내고자 했다. 또 교육학자인 루이스 아처(Louise Archer) 등은 이 세 가지 자본에 더해 최근 과학이 사회적 계급의 재생산과정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함에 따라 기존의 경제·문화·사회적자본을 취합하는 개념적 도구로 과학자본(Science Capital)이라는 확장된 개념을 제시했다.

이러한 자본에 대한 개념을 도시영역으로 확장해 본다면 도시 정체성 확립과 도시경쟁력 확보를 위한 도시 자본의 확충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유용한 해석이 가능하리라 본다. 과학자본이란 시민 개인이나 집단이 과학에 대한 흥미나 참여, 성취 등을 높이거나 도울 수 있는 사용가치 내지 교환가치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환경 내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태도 및 이해, 관심의 정도 등을 모두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ICT(정보통신기술)를 매개로 한 공유경제 서비스(공유주차·공유숙박·공유자동차 등)나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스마트도시 관리 방안 등 경제자본을 매개로 한 과학적 구현 사례, 미디어아트 기반의 창작활동이나 공동 창작공간의 활용 등 문화자본을 매개로 한 과학적 구현이 등이 대표적이다. 또 최근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사회문제 해결형 리빙랩과 사용자를 제품개발이나 창작물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시키고자 하는 크라우드소싱 문화의 확산도 사회적자본을 매개로 한 과학 분야의 구체적인 실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시는 그동안 개발 위주의 양적성장이라는 경제자본의 토대 위에서 도시가 빠르게 발전했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 급격한 도시화의 진전 속에서 기존 공간에 축적된 문화자본에 대한 보전·활용에 관한 노력이나 경험의 공유는 상대적으로 매우 부족했다. 이에 반해, 지자체의 조기 정착과 시민사회에서의 사회적자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자본 확충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도됐고 그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시는 마을공동체 활성화 및 사회적 관계망 형성 부문에 있어서는 타 시도의 모범 도시로 회자될 만큼 어느 정도 성과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시대적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대전시의 도시 DNA 강화를 위해 단지 기존의 경제 및 문화자본이나 사회적자본에만 국한해 도시경쟁력 제고방안을 고민한다면 이는 과학자본의 활용 관점에서 매우 아까운 기회비용을 날려버릴 수 있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글래스고우, 게이츠헤드, 그라츠, 빌바오 등의 사례도 있지만 대전시가 지향해야 할 보다 바람직하고 경쟁력 있는 도시의 미래상 설정을 위해선 매년 약 12만 명 이상이 즐겨 찾는 과학축제의 도시 에딘버러나 반도체·신소재 등 고부가가치 정보산업이 특성화된 독일 드레스덴을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과학교육 및 과학기술의 교류 협력을 기반으로 한 과학자본의 확충을 통해 도시경쟁력의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도시들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대전시는 이들 도시에 못지않은 과학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과학자본이 생활문화 영역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과학자본이라는 도시 DNA가 우리의 일상생활 속까지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 섬처럼 고립돼 있는 대덕특구를 과학자본의 산실로서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개방형 시민중심공간으로 전환해야 하고 과학문화에 대한 체험 교육이 제도권 내 교과과정뿐만 아니라 평생학습과정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보다 적극적인 시민참여와 협업공간에 대한 지속적인 확충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이 과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이 강구돼야 하며 지역의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재원 확보 방안 등에 대해서도 시민사회 및 지역기반의 기업들과 함께 심도 있게 논의될 수 있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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