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대 명예교수

춘수(春水)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위에 물이로다.
차중(此中)에 노안(老眼)에 뵈는 곳은 무중(霧中)인가 하노라

봄이 왔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풀려 강물이 많이도 불었다. 강물에 배를 띄워놓고 가는 대로 맡겼다. 배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니 물 아래는 하늘이요 하늘 위에는 물이다. 요즈음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두보의 7언 율시 ‘小寒食舟中作(소한식주중작, 한식 다음날 배 안에서 짓다)’에 이런 3·4행의 시가 있다.

春水船如天上坐(춘수선여천상좌) 봄물에 뜬 배 하늘 위에 앉은 듯하고
老年花似霧中看(노년화사무중간) 노년에 보는 꽃은 안개 속인 듯 희뿌옇게 보이네
?송명호 역

단원은 두보의 시 ‘小寒食舟中作’ 한 수를 감상하고 이 시를 모티프로 해 시조 한 수를 지었으리라 생각된다.
김홍도의 ‘舟上觀梅圖(주상관매도)’라는 그림이 있다. 죽음을 앞둔 두보의 삶을 그린 그림인데 거기에는 화제로 바로 이 두보의 시, 행서체로 쓰인 ‘老年花似霧中看’ 한 구절이 쓰여 있다. 아마도 위 시조를 짓고 흥취가 남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시조가 곧 그림이요, 그림이 곧 시조였다.
단원 김홍도는 화가로 영·정조의 문예부흥기에서 순조 연간 초까지 활동한 조선 제일의 풍속 화가다. 어린 시절 강세황의 지도를 받아 그림을 그렸고, 그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돼 정조의 신임 속에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를 잡았다. 산수·인물·불화·화조·풍속 등은 물론 모든 장르에 능했으며,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뛰어났다. 시조 2수가 전해지고 있다.

먼 데 닭 울었느냐 품에 든 님 가려 하네
이제 보내고도 반밤이나 남았으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정을 펴리라

먼 데 닭이 울었느냐, 품에 든 님이 가려하는구나. 이제 님을 보내고도 밤이 반이나 남았으니 차라리 보내지 말고 남은 정을 나누고 싶구나. 새벽에 님은 그의 품을 떠났나 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아쉬워 아침까지 함께 있고 싶었나 보다. 정도 그리 많았나 보다.
삼십대에 김홍도는 “그림을 구하는 자가 날마다 무리를 지으니 비단이 더미를 이루고 찾아오는 사람이 문을 가득 메워 잠자고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라는 말이 전할 만큼 그림으로 높은 이름을 얻고 있었다고 한다.
조희룡의 ‘壺山外史(호산외사)’에 김홍도의 모습에 대한 유명한 일화 한 도막이다.

집이 가난하여 더러는 끼니를 잇지 못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그루를 파는데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돈이 없어 그것을 살 수 없었는데 때마침 돈 3천을 보내주는 자가 있었다. 그림을 요구하는 돈이었다. 이에 그 중에서 2천을 떼내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 말을 사다가는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하고, 나머지 2백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니 하루의 계책도 못 되었다.

그는 이렇게 낭만적인 예술가였지 생활력이 있는 가장은 아니었던 같다. 단원은 화가이기도 했지만 시(詩)·서(書)에도 능했고, 또한 소문난 음악가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채에 도량도 크고 넓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아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신선 같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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