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박영진

중국의 문호 린위탕(林語堂)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는 질문에 “식사를 마치고 안락의자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시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가족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봤다. 어머니께선 “식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온 저녁시간”이라고 말씀하셨고, 아내는 “가족이 식탁에 모여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볼 때”라고 했다. 새벽같이 출근했다가 밤늦게 귀가하는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서 식구들을 만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나 역시 가족이 한 상에 삥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께선 일제의 혹독한 수탈정책에 초근목피로 어린 시절을 살았고,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의 것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생활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고, 감춰뒀던 우리말을 사용하는 기쁨을 누리기 무섭게 조국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는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며 피를 흘린 6·25전쟁을 겪으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다. 전쟁이 끝난 후엔 폐허가 된 땅 위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자녀들을 낳아 길렀다.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두 손이 갈퀴 발이 되도록 일하면서 자녀들을 가르쳤다.

우리가 장성해 가정을 이룬 뒤에는 손주들을 길러주셨고, 이제는 증손들의 재롱떠는 모습을 보며 삶의 보람을 느끼신다. 이렇게 살아온 어머니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자 “힘들고 어려웠지만 어렸을 때”라고 대답하신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태어난 내 또래들은 형제들이 많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채 생활전선으로 내몰린 아이들이 많았다. 당시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이 잘 됐다. 이때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인당 1000달러를 오르내렸다. 이런 시대에 성장한 나에게도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궁핍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 세대는 대부분 1970년대 말이나 1980년대 초에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정부에서 추진한 산아제한 정책 탓에 자녀를 많이 낳으면 가난을 대물림시킨다는 의식을 머릿속에 갖고 있었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잖다’라는 구호 아래 가족계획을 실천한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학교에 다니면서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얻었고, 계층의 상승 이동을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은 교육이라고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다행히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노력해 준 아이들의 대학 진학률도 90%에 가까웠다.

그런데 집 안에서 왕자와 공주로 자란 아이들은 험하고 어려운 일은 할 줄 모르고, 힘을 쓰는 일은 엄두도 내지 않아 손에 기름을 묻히거나 땀을 흘리는 노동은 직업 목록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을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아이들에게도 가장 행복했던 시기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던 어린 시절”이라고 대답한다.

어머니 세대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을 수탈당했던 일제강점기였고, 우리는 전란을 겪은 뒤 잿더미 위에서 자랐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시기에 태어나 다복하게 유·소년기를 보냈다. 이렇게 3대가 성장한 시기는 제각기 다르지만 행복했던 때를 물으면 한결같이 ‘어린 시절’을 꼽는다. 이를 보면서 요즈음 강원도 남대천에서 어미 연어 귀향 맞이 행사를 하고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연어는 모천회귀성(母川回歸性)이 있는 물고기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태어나 강물을 따라 머나먼 북태평양까지 갔다가 자신이 태어난 모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는 생을 마감한다. 부화된 어린 연어가 태어난 곳을 떠나 먼 바다로 나가 3~5년 간 성장한 후 길을 잃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어도 우리들처럼 가족을 그리면서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마음속 빛바랜 사진을 한 장씩 지닌 채 먼 바다를 떠돌다가 산란기를 맞아 제가 태어난 곳을 찾아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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