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들다는 사리를 분별해 헤아릴 줄 아는 힘이다. ‘철들다’의 ‘철’은 가을철, 겨울철과 같이 계절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결국 제 철이 됐거나, 농사지을 계절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말이다.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최적의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일전 지역 언론의 한 기자는 지역기자들을 향해 철 좀 들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김정섭 공주시장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이 갈 길 바쁜 시정에 발목을 잡고 있고, 일단 까고 보자는 식의 비난을 위한 비난은 삼가야 한다고 했다. ‘기레기’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정론직필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최적의 때와 어른스러움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생계형 기자’를 자처하는 그가 과연 ‘정론직필’을 운운하고 ‘기레기’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본인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기자의 질문까지 ‘망신주기’라고 폄하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뉴스 소비자가 공급자가 되는 세상이다. 소셜미디어 시대 기자의 질문은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특권 중의 하나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담 폐막식 기자회견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아 세계적인 망신을 당한 례가 있다. 시민들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질문까지 매도하니 감탄고토(甘呑苦吐)가 따로 없고 한마디로 언어도단이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과 기득권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있다. 견제와 균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권력은 일방적으로 독주할 위험성이 커진다. 권력의 일탈행위를 보고도 눈을 감는다면 죽은 언론이다. 올바른 보도와 공정하고 객관적인 논조로 시민들의 눈과 귀를 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고 아부하고 기생하려는 행태는 정상이 아니다. 시정지 역할을 자청하고, 권력의 딸랑이 역할을 자처해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론이 한 방향으로만 달려서는 곤란하다. 지역사회가 튼튼해지려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언론은 다양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싣고, 그 판단은 독자인 시민에게 맡기면 된다. 권력의 잘못을 보고도 경보음을 울리지 않고 멀거니 지켜만 본다면 제대로 된 양심이 아니다.

‘언론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감시견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밖으로 사회를 비추고 안으로는 스스로를 비판하고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간신의 유형을 5가지로 구분한 바 있다. 마음을 반대로 먹고 있는 음험한 자, 말에 사기성이 농후한데 달변인 자,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고집만 센 자, 뜻은 어리석으면서 지식만 많은 자, 비리를 저지르며 혜택만 누리는 자 등이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간교하고 간사한 뱀이 판을 친다. 뭇사람들을 미혹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뱀의 간교한 세치 혀에 농락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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