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자 이순복 대하소설

 최씨의 충절은 참으로 맵고 추상같았다. 그녀는 북지왕 유심에게 그리 말하고 나서 곧 바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서 목숨을 끊어버렸다. 유심은 아내의 이마에서 철철 쏟아지는 선지피를 보고도 애달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철철 흘리는 어미에게 울면서 달려드는 어린 자식들을 인정사정없이 목을 쳐서 숨통을 끊어 버렸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편단심에서 우러나온 충정의 마음이 이렇게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오직 아들 요 하나를 남기어 아이의 손을 잡고 막내 동생 유연에게로 가서 맡기고 당부하기를

“아우, 아우와 내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충성이라는 마음만은 하나일세. 내 비록 할아버님 곁으로 먼저 떠나지만 마음만은 아우 곁에 두고 가니 그 표가 이 용렬한 요일세. 거두어 기를 가치가 있으면 거두고 그렇지 못하면 자네 요량대로 처분하게나.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네.”

유심은 요를 아우 연에게 맡기고 곧장 소열황제 유비 현덕을 모신 묘각으로 가서 몇 차례 절을 올리고 아뢰기를

‘신 북지왕 유심은 차마 할아버님의 거룩한 기업을 남의 손에 넘겨 줄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서 이를 죽음으로써 막아보려고 하였으나 신의 힘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처자식을 할아버님께로 먼저 보내고 저도 목숨을 버려 할아버님께로 가고자 합니다. 할아버님의 영혼이 여기 계신다면 손자의 한줌 붉은 마음을 헤아려 주소서...’

유심은 그리 염하고 한바탕 통곡을 풀어 놓더니 목숨을 끊었다. 이 장렬한 모습을 뒷날 시인이 있어 노래하니 다음과 같았다.

‘촉나라의 군신이 모두 달갑게 무릎을 꿇었건만
오로지 한 아들만이 슬퍼 울었다.
서천의 기업은 기울었지만 북지왕은 진정 장부다워라.
몸을 던져 조상님께 보답하여 스스로 자결하였으니
아아! 늠름한 사나이다.
이러하니 어찌 한나라가 완전히 망했다 할 것인가?’

형의 아들 유요를 받아드린 유연은 형들과는 달리 아주 영특하고 슬기로웠다. 유연은 나라가 기운 것을 인정하고 살길을 도모하려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손님이 찾아왔다. 유영이었다.
유영은 유비 현덕의 양자 유붕의 아들이었다. 유연은 반갑게 유영을 맞으며 말하기를

“잘 오시었소. 지금 나라꼴이 이 모양이라 어찌해야 할지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고견을 들려주시오.”

간절히 말하자 유영이 대답하기를

“제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저의 형 유선에게 운신할 묘방이 있을 터이니 데려와서 상의해 보십시오.”

“맞아요. 유선형이라면 안심하고 운신할 방도를 상의할 수 있을 것이오. 어서 가서 유선형을 데려오도록 하시오.”

이에 유영은 유연의 말을 좇아 자기 형의 집으로 달려갔다.?유연이 고국산천을 뒤로하고 망명의 길을 떠나려하니 제일 먼저 유영의 맏형 유선이 생각났던 것이다. 유선은 현덕의 양자 유봉의 장자요 유영의 형이다. 헌데 유연은 누구보다도 유선을 믿고 의지한 면이 많았다. 그래서 유영에게 형 유선을 데려오라고 말하자 유영이 두 말 없이 달려가 형 유선을 데려왔다. 유연은 당장 얼굴이 밝아지며 자신의 고심을 해결해 줄 유선이 나타나자 크게 안심하며 미덥게 두 형제를 바라보며 묻기를

“집채가 넘어가는데 기둥 하나를 건질 수 없겠소? 만약 도성이 깨어지고 보면 생사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오. 어찌하면 살길이 있을지 형의 생각을 말해 주시오.”

유연이 유선에게 묻자 유선이 곧장 대답하기를

“유연 아우님의 지략이 나보다 훨씬 뛰어난 줄 알고 있으나 어리석은 나의 소견으로는 도주를 생각할 때라 생각합니다. 이미 항복하신다는 폐하의 뜻은 고칠 수 없고 사직도 지탱할 수 없으니 속히 몸을 멀리 피했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인가 합니다. 만약 우물쭈물하다가는 능욕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옳습니다. 형의 말씀보다 더한 상책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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