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자. 이 때는 생리를 일종의 여성 몸의 정화과정으로 보았다. 특히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기원전 약 570~510)는 여인들이 음식물을 너무 과하게 섭취한 나머지, 그 영양소를 몸 안에 지나치게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잉여의 영양소를 바깥으로 내 보내야만 했는데, 이것을 몸 안에서 빼내는 작업이 바로 여성 생리라는 거다. 다음은 히포크라테스(Hypokrates: 기원전 약 460~375)다. 그는 4가지의 체질요소

(Korpersaften)를 가지고 인간의 건강과 여성의 생리를 설명하였다. 이 4원소는 바로 바로 피, 점액 황담즙 그리고 흑담즙인데, 이 4가지가 몸 속에서 균형이 잡혔을 때를 건강한 상태로 보았고, 그 반대로 이 4가지의 체액균형이 몸 안에서 깨지면 바로 병으로 보았다. 이런 체질론과 연관 지으면서 이 넘쳐나는 피를 바깥으로 밀어내는 작업을 그는 여성의 생리로 보았다.

다음은 아리스토텔레스(기원 전 384~322)인데, 위의 피타고라스·히포크라테스와도 비슷하게, 그 역시 몸 속에 피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바깥으로 흘러 나오는 것을 생리로 간주하였다. 그는 남성들에 관한 얘기도 덧붙인다. 남성은 따뜻한 체질이다 보니, 그들의 넘쳐나는 잉여의 피는 몸 속에서 자연스럽게 끓어오르고, 그것이 다시 정자로 변모하여 분비된다는 거다.

로마의 사학자 가이우스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 23~79)도 유사한 관점을 지녔다.그는 새로운 생명은 피에서부터 생겨난다고 보고선, 이 과정을 빵(Kuchen)과 비교하였다. 그는 남성의 정액이 그 효모의 역할을 맡는다고 보는데, 효모 때문에 반죽이 부풀어 올라 빵이 되는 것처럼, 정액도 이런 역할을 하여 사람 형상을 만든다는 거다. 그 외에도 그는 임신 이외의 생리를 독성이 있는 피로 보았다.

중세는 어떠했는지를 보자. 당시는 여인들이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는 것을 건강의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여겼던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생리를 아주 부정적인 과정으로 간주하기도 했는데 바로 죄와 연결 지우는 것이다. 중세의 많은 학자들처럼, 힐데가드 빙엔 수녀(1098~1176) 같은 경우도 생리를 죄의 결과라고 보았지만, 확실한 것은 생리는 임신을 할 수 있는 근거로 해석했다는 점이 다르다.

힐데가드는 수녀였지만 결혼한 부부 못지않게 성에 관한 얘기들을 쓴 저서를 남겼다. 그녀가 지칭한 어떤 특정한 날 부부관계를 가지면 남자아이를 만들 수 있고, 어떤 날 관계를 하면 여자 아이를 낳는 부부지침서까지도 표명했다. 이 테마를 학문적으로 접근을 했지만 성공시키지 못했던 이도 있었는데 바로 16세기의 파라첼수스(Paracelsus: 1493~1541 )인데, 그 역시 생리피에는 독성이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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