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도

11월

박형준

의자에 다 타버린
연탄이 놓여 있는 줄 알았다.
골목에 쌓인 상자처럼 무뚝뚝하다.
문 닫힌 연탄가게 앞을 지날 때면
주름살에 가린 쑥 들어간 눈
언제나 거리의 사람들을 쫓는 늙은 여인.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린 채 앉아 있다.
늙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사람을 쬔다.
아침의 부신 빛에 다 타버린 연탄
하얗게 허물어져 내린다.

하루하루 해가 짧아지고 스산한 바람이 붑니다. 이제 곧 겨울이 닥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추워도 보일러 스위치 하나 올리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산동네나 달동네에 몸뚱이 하나로 사는 사람들은 월동 준비를 연탄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11월 첫눈이 내릴 즈음이면 검고 싱싱한 연탄을 실은 리어카들이 비탈진 골목을 힘겹게 오릅니다.

오늘은 문 닫힌 연탄가게 앞에 늙은 여인이 의자를 내다놓고 그 위에 되똑하게 앉아 있습니다. 주름살에 가려 두 눈이 쑥 들어갔군요. 보나마나 미이라처럼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 눈자위엔 눈물이 가스라지게 말랐을 겁니다. 그런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흡사 다 타버린 연탄 같습니다. 그 늙은 여인이, 이가 다 빠져 옴쏙 들어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죄다 빤히 쳐다봅니다. 그 모습을 시인은 “사람을 쬔다”라고 인상적으로 표현했군요.

세상 모든 것이 햇볕을 쬐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사람 기운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더더구나 이제 날이 추워져 밖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한겨울이 되면, 사람 구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죽은 듯이 전기장판 틀어놓고 입김 허옇게 서리는 추운 방에 누워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이 여인에게는 지금 밖에 나와 사람 기운을 쬐는 것이 월동준비를 하는 겁니다. 이제 곧 “하얗게 허물어져” 버릴지라도, 사람 기운을 쬐어 두어야 그나마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외롭기 때문이죠. 외로움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도 성마르게 합니다. 그 메마름을 사람 사이 기운을 받아 윤기 나게 해야 합니다. 없이 사는 사람이나 시인이나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나 그 일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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