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위원장

한국잡월드는 경기도 성남에 자리잡고 있는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국내 최대 종합직업체험관으로, 2012년 개관한 이래 누적 방문객이 5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잡월드 직원은 모두 390여 명인데 338명이 파견 비정규직이고, 그 중에 강사직군은 275명(82%)에 이른다. 아이들에게 직업 체험을 통해 꿈을 키울 계기를 주는 강사들 대부분이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라는 말이다.

한국잡월드 비정규 노동자 90여 명이 직접 고용하라고 요구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 41명은 지난 21일부터 단식을 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비닐로 하늘을 가린 침낭에 들어가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자면서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첫눈이 내린 24일에는 농성장 비닐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기도 했고, 단식과 추위로 탈진한 노동자들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국잡월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뜻을 무시한 채 자회사에 채용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겠다고 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들도 현재 자회사 설립을 고집하고 있어 노동자들이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2017년 7월에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를 정규직 전환 방식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불씨를 만들었다. 간접 고용 노동자의 경우 조직 성격과 규모,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하여 노사 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직접 고용이나 자회사 방식 등을 결정하도록 했던 것이다. 자회사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에도 용역 형태의 운영을 지양하고 전문서비스 제공 조직으로 실질적 기능을 하도록 운영하라고도 했다.

출연연구기관이 시설관리, 보안(경비), 미화(청소)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법과 정관에 따른 연구원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없다. 연구원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은 기술지주회사, 연구소 기업과 같이 연구개발과 직결되는 사업이나 특정 기술의 사업화 등을 위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용역회사 설립을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당사자들과 협의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은 노사 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서 전환 방식을 결정하라고 했지만, 대부분 출연연구기관들은 협의기구에서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자회사 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게다가 독자적으로는 자회사 설립이 어렵다고 판단한 출연연구기관들이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설립한 자회사(PMC)와 공동 출자회사를 설립하려고 미리 접촉하고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설령 노사협의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출연연구기관 자회사는 사실상 용역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므로 용역 형태의 운영을 지양하라고 한 정부 가이드라인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가이드라인은 직접 고용으로 절감하는 용역업체 이윤, 부가가치세 등의 재원을 전환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사용하라고 했다. 그러나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비용을 줄일 수도 없어 처우 개선의 여지가 없다.

출연연구기관들이 자회사 설립을 고집하는 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피할 수 없다. 정규직들이 직접 고용을 반대하는 한국잡월드와는 달리 대부분 출연연구기관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직접 고용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공공기관 중에서 카이스트는 직접 고용하기로 합의했고, 연구재단,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등은 이미 직접 고용했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희망고문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유독 과학기술계 20여 개 출연연구기관들이 정부 가이드라인과 노동자들의 요구에 역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정부와 사용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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