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성 전 둔산여고 교장

최근 이삼년 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계족산을 오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죽림정사에서 오르는 임도길이 건강에 도움을 주고 풍광이 좋아서 계속 그 길을 걷는다. 임도삼거리를 거쳐 절고개까지 다녀오면 10㎞가 넘는 길이다. 시작해서 30분가량은 꾸준히 오르막길이다. 이때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런데 고맙게도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10여 분 내리막길이 계속되다. 그 다음부터는 5분 간격으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걷기 편한 길을 제공해주고 있다. 칠십 가까운 늙은이들에게는 참 고마운 등산로이다. 그리고 걸을 때마다 계절이 변하면서 우리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초봄에는 산길의 공기가 아직은 겨울의 찬기운의 여운은 있지만 볼에 닿는 느낌이 상쾌하다. 길을 걷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계족산성 위의 몇 그루의 고목들이 아름다운 자태들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길가에 쌓여 발에 밟힐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지난 세월의 그리움과 아픔을 떠오르게도 한다. 초여름에 활엽수 나무들이 연두색깔에서 진초록으로 변하여 갈 때는 그들이 힘차게 자라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 나도 힘이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여름에는 계족산의 나무들이 훌쩍 커서 나무와 길 사이 공간이 대전 근교 어떤 산보다도 넓다. 따라서 그늘진 공간이 넓어서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시원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가을이 되면 느티나무, 소사나무, 벚나무, 아카시아 그리고 단풍나무 잎들이 떨어져서 임도 길을 디자인한다. 연한 갈색과 짙은 갈색 그리고 낙엽이 뒤집어진 색깔은 대부분 은사시나무 색깔 아니면 회색과 함께 어우러져 보여주는 색은 고상하면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색깔이다. 그리고 단풍나무의 빨간, 노란 낙엽이 액센트를 준 모습은 어떤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비구상의 명화다. 그 위를 밟고 걷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빨간 카펫 위를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기다려진다. 그리고 해마다 그려지는 모습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더 기다려지는 것 같다. 인생이 살아가는 길을 자연이 변하는 색과 비교해서 표현한다면 유아시절에는 흰색계통이고 소년·소녀시절에는 분홍색계통이 되는 것 같고 청장년 시절은 연두색에서 짙은 초록색계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노년 시절은 뒹구는 낙엽과 같은 짙은 갈색과 회색이고 죽음은 검정색으로 끝난다는 생각이 든다.

무술년도 이제 마지막달이다. 내가 다니는 등산길에 두 군데 쉼터가 있다. 한 곳은 임도삼거리고 또 한 곳은 절고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휴식을 하면서 따뜻한 차 한잔 아니면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신다. 그러면서 서로 담소를 나누고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런데 금년에는 들려오는 소리들이 모두 우울한 이야기들뿐이다. 소득주도경제, 최저임금, 태양열 에너지 생산, 주52시간 근무, 청와대 특별감찰반 해이된 근무형태, 무지막지한 노동단체의 행위 등 너무나도 걱정되는 많은 문제들을 나름대로의 경험과 식견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 하나도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량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 그래도 이런 점은 좋다”라는 말이 나와야만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비관적인 말들만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하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원전이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라고 하면서 폐기한다면서 체코에 가서는 안전하다고 하면서 원전수주 세일을 하는 대통령을 모두들 걱정하고 있다. 체코 국민들이 웃을 일이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다. 우울한 이런 이야기는 무술년 노을에 모두 묻고 싶은 것이 나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우리국민 모두가 한마음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기해년 황금돼지해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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